김남석 사회부 차장

미국 연방헌법 제2조 제2항은 ‘대통령은 미국에 대한 범죄에 관해 탄핵의 경우를 제외하고 형 집행정지 및 사면을 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이 헌법 제정 당시 ‘건국의 아버지’들은 대통령 사면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입법부가 만든 법률에 따라 사법부가 내린 판결을 무효로 하는 사면권은 1535년 영국 헨리 8세에서 비롯된 전제군주의 초법적 권리였다. 영국 왕의 통치를 벗어나기 위해 독립을 선언한 미국 건국 주역들은 사면권을 ‘선출된 왕’(대통령)에게 부여하는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알렉산더 해밀턴 등은 국민은 물론 의회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반역자·폭도에 대한 사면과 용서가 가능해야 연방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대통령이 사면을 남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도 있었다. 결국, 제한 없는 사면권이 부여됐고 이후 건국된 많은 국가의 대통령 역시 사면권을 갖게 됐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확립한 사면권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에 의해 빛을 발했다. 1861년 발발한 남북전쟁은 4년 1개월여 만에 북부의 승리로 끝났지만,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남겼다. 남부를 향한 북부인들의 분노·증오는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링컨 대통령은 탈영한 북군 병사는 물론 포로가 된 남군 병사·장교까지 무더기로 사면했다. 종전 5일 뒤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했지만, 대통령직을 계승한 앤드루 존슨은 그의 뜻을 이어받아 1868년 남부에 대한 포괄적·전면적 사면령을 내렸다. 남부연합 대통령이었던 제퍼슨 데이비스,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도 사면됐다. 북군 총사령관 출신으로 전투에서는 잔인할 정도로 용맹했던 율리시스 그랜트 역시 대통령이 되자 링컨 대통령의 사면·포용정책을 실천했다. 최근 미국 상황은 좀 다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임기 종료 전 측근들을 전원 사면했고, 조 바이든 대통령도 동생·차남 등 가족 5명을 사면했다. 트럼프 2기 들어서도 줄사면이 단행되면서 사면권 찬반 논쟁이 확산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광복절 사면을 단행한 지 보름여가 지났지만 후폭풍이 여전하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부부, 윤미향·최강욱 전 의원 등이 포함된 사면·복권에 대해 당초 대통령실은 “대통합 의지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반면, 야당은 “오만·독선으로 강행한 사면권 남용 흑역사”라고 반발했다. 사면 후 여론 추이, 사면 당사자들의 행태를 보면 야당 평가가 훨씬 설득력 있다. 8월 25∼26일 미디어토마토 조사 결과, 이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한 긍정평가는 48.3%로 사면 전보다 4.5%포인트 하락했다. 최대 수혜자 조 전 대표의 편가르기 행보 역시 사면의 목표인 사회통합과 거리가 멀다. 지방선거 출마 등을 저울질하며 ‘호남 민심 투어’ 등 개선장군 행보를 이어가는 그는 2030 남성을 겨냥해 “극우 성향을 보인다”는 등의 주장을 일삼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사면으로 가장 피해 본 사람은 이 대통령”이라는 우상호 정무수석 발언은 실소를 머금게 한다. 공동체 통합을 위해 확립한 대통령 사면권이 정치 양극화를 고착화하고 국민 불신만 양산한다면 더 유지해야 할 필요가 뭘까.

김남석 사회부 차장
김남석 사회부 차장
김남석 기자
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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