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동 경제부 부장

지난 8월 19일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세계적으로 저명한 저널 ‘포린어페어스’에 게재한 ‘미국의 다가오는 붕괴(America’s Coming Crash)’라는 글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글이 파문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글쓴이가 유명하기 때문만도, 글이 실린 저널이 권위 있기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생각은 해왔지만 명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실제(實際)를 새롭게 환기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포린어페어스는 1947년 미국 외교관 조지 케넌이 ‘X’라는 가명으로 ‘소련 행동의 근원’이라는 글을 실어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세계 전략을 소련에 대한 ‘봉쇄(Containment)’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저널이다. 봉쇄는 미국의 대외 전략이었지만, 봉쇄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행위도 그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제2차 대전 이후 세계의 모습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게 중론이다. 당시 케넌이 가명으로 포린어페어스에 글을 발표했을 때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는 “이 글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이 글이 발표되자마자 많은 사람이 읽고, 토론하며 봉쇄가 향후 미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돼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최근 로고프 교수의 글에 대해서도 비슷한 평가가 나오는 것 같다. 그가 쓴 ‘미국의 다가오는 붕괴’라는 주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로고프 교수의 글은 미국의 과도한 부채가 경제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정치·군사적인 측면에서도 ‘초강대국 미국’의 위상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가 이 글을 경제 전문지에 게재하지 않고, 포린어페어스에 게재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는 “부채위기나 금융위기는 △재정 상황이 불안정하고 △금리가 높으며 △정치가 마비돼 있고 △충격(shock)이 발생했는데도 정책결정자들이 보수적으로 행동할 때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들 4가지 조건 중에서) 미국에서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은 충격 한 가지뿐”이라고 단언했다. 최근에는 영국에서도 ‘영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는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와 떠들썩하다. 프랑스에서는 “(국가부채가 이런 속도로 늘면) 프랑스도 2010년 그리스처럼 된다”는 말이 나돌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 선진국 중에서 부채 비율이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 일본에서도 나랏빚 급증이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최근 정부는 “내년 예산(총지출) 증가율이 전년 대비 8.1%에 달하고,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4.0%를 기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국가채무 비율도 사상 최초로 GDP의 50%를 넘겨 51.6%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는 “재정 지출을 더 늘려도 별문제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전파하기 위해 바쁜 것 같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세계 주요국이 모두 부채 증가를 우려하는 상황에서, 기축통화국도 아니고 소규모 개방 경제를 가진 한국이 재정을 이렇게 급격하게 확대해도 정말 후유증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조해동 경제부 부장
조해동 경제부 부장
조해동 기자
조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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