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흔히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으로 ‘균형과 견제’를 꼽는다. 입법·사법·행정 삼권분립은 이런 인식에서 나온 제도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통치 권력을 독점해선 안 되고, 상호 견제할 수 있도록 분산돼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명예혁명이나 프랑스대혁명 이래 지속돼 온 자유민주주의 정치사는 일종의 권력 분배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주주의 정치철학의 바탕에는 ‘어떤 인간도 완벽할 수 없다’는 명제가 깔려 있다. 어떤 이념이나 개인, 집단도 진리와 정의를 전유(專有)할 수 없다는 것이다. 17세기 자유주의 언론사상이 등장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정치권력이나 권력자도 완벽할 수 없으므로 다수의 국민에 의해 감시받고 견제돼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정부의 언론 통제 양식은 크게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언론의 모든 기능을 억압·위축시키는 법제화가 거침없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방송사의 뉴스·시사 프로그램 제작을 크게 제약할 수 있는 방송법이 개정됐다. 편성 규약에 의해 보도 책임자 임명과 뉴스 제작에 노·사 동수로 구성된 방송편성위원회가 개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더구나 이 규정은 공영방송뿐 아니라 SBS 같은 민영방송과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까지 확대 적용된다. 이제 뉴스를 제작·편성할 수 있는 모든 방송 매체의 보도 내용이 방송사 내부 조직과 노조에 의해 사전 검열될 수 있어 방송으로 보도되는 대상에 대한 국민의 선택권이 크게 제약받게 된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했다가 언론 단체들의 강한 저항에 부닥쳐 무산됐던 언론중재법 개정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한다. 이른바 ‘징벌적 배상제’ 규정을 통해 언론사는 물론이고 인터넷 매체들의 허위 정보 확산을 막겠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표방한 방송법과 마찬가지로 나름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매체들이 내보낸 허위 정보에 대한 판단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법률적 합리성과 공정성은 큰 논란이 될 수 있다. 자칫 자의적 잣대를 가지고 언론을 압박하는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막대한 배상금은 언론사, 특히 규모가 작은 인터넷 매체들을 압박하는 자기검열(self-censoring)를 유발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전방위적 언론 규제로 인한 위축효과(chilling effect)는 결국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토대를 근본부터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통치 권력이 중요한 사안들에 대한 국민의 판단 기회 자체를 원천적으로 박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법 개정으로 방송의 보도 기능을 크게 위축시킨 데 이어 징벌적 배상제는 나머지 언론 매체들의 권력 감시 기능도 마비시키게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다양한 이해집단으로부터 언론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언론중재법으로 언론을 통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무엇보다, 통치에 방해가 될 표현 자체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은 반(反)민주적이다. 어쩌면 언론중재법 개정은 ‘언론 통제 완전체’를 마무리 짓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일 수도 있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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