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동권리옹호 Child First

가정보호 위탁 아동들의 ‘자립여행’

 

경남지역 위탁 아동 10명 참여

여행 코스짜고 각자 역할 맡아

값진 추억과 함께 자신감 충전

 

“늘 우울하게만 느껴지던 바다

친구들과 함께 보니 즐겁기만”

지난 6월 자립여행에 참가한 가정 위탁 아동들이 제주의 한 요리 체험관에서 요리 수업을 듣고 있다.  초록우산 제공
지난 6월 자립여행에 참가한 가정 위탁 아동들이 제주의 한 요리 체험관에서 요리 수업을 듣고 있다. 초록우산 제공

“계획부터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일정을 짜면서 주체적인 여행을 할 수 있었어요.” “친구들과 정이 많이 들어, 앞으로 제주도에 갈 때마다 친구들과 선생님이 많이 생각날 것 같아요.”

지난 6월 제주 자립캠프에 참여한 가정보호 위탁 아동들의 소감이다. 경남 지역 위탁 아동 10명이 함께 떠난 ‘제멋대로 제주’는 아이들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한 여행이었다. ‘자립’을 주제로 아이들이 직접 고민, 토론, 투표하며 정한 ‘아동참여형 자립 프로젝트’다.

위탁 아동은 학대·방임·경제적 사정 등으로 친부모와 함께 살기 어려운 아이들로, 보육원 같은 시설이 아닌 일반 가정에서 일정 기간 보호·양육을 받는다. 가정의 따뜻함을 누릴 수 있지만 또래보다 일찍 자립을 준비해야 하는 무게도 안고 있다. 이들에게 자립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그런 아이들에게 이번 캠프는 여행을 넘어, 스스로 선택하고 실행하며 자립 감각을 키우는 훈련의 장이 됐다.

아이들은 지난 3월부터 모여 ‘자립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했다. ‘맛집 탐방’ ‘스타일링 찾기’ ‘자립 여행’ 등 다양한 제안이 나왔고, 투표 끝에 제주 여행을 최종 확정했다. 프로그램 이름도 다수결로 ‘제멋대로 제주’로 정했다. 이후 여행지를 조사하고 투표하며 코스를 짜며, 영상 감독, 요리사, 수영 강사 등 역할을 나누었다. 경험을 자신들만 누리지 않고 또래 위탁 청소년 200여 명과 나누기 위해 인스타그램을 통한 공유와 인스타북 제작도 계획했다.

출발 당일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보는 한 아이는 손이 떨릴 만큼 긴장했다. 지적장애가 있는 아동은 안전벨트를 혼자 매지 못했다. 아이들은 이런 어려움을 겪는 친구를 위로하고 도우며 설렘 가득한 여행을 시작했다. 경남가정위탁지원센터는 사전 상담으로 필요한 지원을 점검하고 전담 인력을 배치해 소아당뇨,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으로 단체 활동에서 소외되기 쉬운 아이들도 끝까지 함께할 수 있도록 했다.

제주에 도착한 아이들은 함덕해수욕장에 서서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한동안 말을 잃었다. “늘 우울하게만 느껴지던 바다의 푸른빛이, 친구들과 함께 보니 청량하게 다가왔어요.” 한 아이는 ‘우울’이라는 단어를 반복하면서도 환하게 웃었다. 점심은 직접 고른 파스타집에서 테이블별로 예산을 나눠 메뉴를 고르며 돈을 관리하는 법을 익혔다. 소품숍을 둘러보던 한 아이는 “다 사고 싶었지만 면세점과 저녁을 생각해 필요한 것만 골랐다”며 돈 관리법을 익혔다고 했다.

낙타 트레킹과 아쿠아리움 등 처음 접하는 경험에 긴장하기도 했지만, 서로를 도우며 금세 긴장은 웃음으로 바뀌었다. 아쿠아리움에서 공연 시간이 다 됐음에도 한 아동이 나타나지 않자 여러 아동이 걱정하며 아이를 찾아 나섰다. 집중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한 아동은 “곧 가오리 먹이 주기가 시작된다”는 말에 자리에 앉아 끝까지 지켜봤다. 가오리가 먹이를 받아먹자 세심하게 관찰하며 동행자와 감상을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낙타 트레킹 역시 처음엔 두려움이 앞섰지만, 함께 웃으며 체험을 이어가며 안정을 찾았다. “평소라면 절대 해볼 수 없었을 경험” “색다르고 너무 재미있었다”는 소감과 함께 아이들은 새로운 추억과 자신감을 쌓아갔다.

하루 끝엔 숙소에서 모여 그날의 경험을 돌아보고 소감을 나눴다. 그날 있었던 갈등을 다시 얘기하며 툴툴 털어내기도 했다. “매일 밤 함께 소감을 나누니 오손도손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며 서로를 위로했다.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공감하며 가까워졌다.

계획부터 여행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계속된 프로그램인 만큼 만족도도 높았다. 프로그램 구성·진행 만족과 재참여 의사 ‘매우 만족’ 응답률이 100%로 나왔다. “우리가 짠 코스라 특별했다” “친구와 더 가까워졌다”는 소감이 이어졌다. “첫날 저녁 양이 부족했다” “베이커리에 못 가 아쉽다”는 솔직한 대답도 있었다. 아이들은 음식 준비, 여행지 검색, 돈 관리, 감정 나눔 등을 통해 자립 역량을 키웠다고 답했다. 무엇보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지지하는 과정에서 소속감이 단단해졌다고 했다.

부모의 울타리 대신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힘을 길러야 하는 아이들에게 ‘제멋대로 제주’는 단순한 여행을 넘어 그 힘을 연습하는 시간이 됐다. 아이들은 “틀을 벗어나 내 마음대로 여행할 수 있어 좋았다”며 다른 위탁 가정 아동들도 ‘자립 여행’을 갈 수 있기를 바란다며 입을 모았다.

문화일보 - 초록우산 공동기획

김린아 기자
김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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