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체 0 : 구상섬전

류츠신 지음 | 허유영 옮김 | 다산책방

“그때 그것이 날아들어 왔다. 농구공만 한 크기에 희미하게 붉은빛을 띤 그것은 화염 같은 긴 꼬리를 매달고 우리 머리 위를 가볍게 날아다녔다.”

천둥 번개가 몰아치던 어느 날, 열네 번째 생일을 맞아 부모님과 케이크 위 촛불을 불어 끄려던 천은 자신의 인생을 뒤바꾼 것을 만나게 된다. 우리 말로는 ‘구형 번개’ 등으로 번역되는 ‘구상섬전(球狀閃電·ball lightning)’이 그것이다. 동그란 불덩어리 형태인 구상섬전은 순식간에 벽을 통과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더니, 순식간에 천의 부모를 태워 한 줌 재로 만들어버리고 사라진다.

그날 이후 구상섬전의 미스터리는 천의 일생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구상섬전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도 종종 목격되는 기현상이었지만 현대물리학 이론으로 그 원리와 정체를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후 과학자가 되어 일평생 구상섬전을 파헤쳐온 천은 동료들과 구상섬전이 자연에 이미 존재해왔으며 특정 조건하에서 발현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포착해낸다. 그들의 결론은 구상섬전은 축구공만 한 크기의 전자, ‘굉전자(宏電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군인이자 동료 중 한 명인 린윈이 이를 무기화하자고 밀어붙이면서 갈등이 빚어진다. 구상섬전을 이용한 살상무기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전쟁 중 우위를 점하기 위해 사용하자는 것이다. 천재 물리학자인 딩이 박사까지 이에 합류해 연구를 거듭하면서 인류의 위기가 고조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전쟁뿐 아니라 인류 문명 전체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군내 반론도 만만치 않다. 소설은 이처럼 여러 인물을 통해 기술적 진보, 군사적 욕망, 인간적 양심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며 끝난다.

딩이 박사는 작가 류츠신의 또 다른 대표작 ‘삼체’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다. 3권으로 이루어진 중국의 SF 소설 ‘삼체’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도 제작·방영되면서 전 세계에서 조명받은 작품. 류츠신은 ‘작가의 말’에서 “소설 ‘구상섬전’은 ‘삼체’ 3부작의 프리퀄이라고 할 수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삼체’와 인물 및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야기는 독립적으로 진행된다. 463쪽, 1만8900원.

인지현 기자
인지현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