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聾人), 즉 듣지 못해 말을 못하는 이 둘이 만났다. 더 따뜻한 곳에서 온 이가 고마운 마음을 표하기 위해 수어(手語), 즉 손으로 하는 말을 한다. 왼손을 손등이 보이도록 가슴과 평행하게 두고 오른손 날을 손등에 수직으로 올린다. 이 동작과 함께 미소 띤 얼굴로 상대를 쳐다보는데 그것을 보고 있는 이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왜? 지금 당장?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라는 표정이다.

조금 추운 곳에서 온 이는 상대가 왼손 엄지를 세운 뒤 손바닥을 가슴에 평행하게 둔 뒤 오른손의 날을 ㄴ자로 보이는 엄지와 검지 사이에 대었다가 떼는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엉뚱하게 상대가 김치를 말하니 당황할 수밖에 없다. 결국 한참을 더 수어를 주고받고 통역까지 등장한 뒤에야 비로소 오해가 풀린다. ‘수어(手語)’와 ‘손말’의 차이 때문이다. 둘 다 손과 몸짓으로 하는 말이지만 그것을 가리키는 말의 차이만큼이나 다른 남북한의 말 차이 때문이다.

듣고 말할 줄 아는 이들에게 수어가 전혀 다른 세계의 어려운 말로 보인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농인들에게 한국어는 외국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남북의 말에 차이가 있듯이 농인들의 말에도 차이가 있어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손말은 입말보다 차이가 더 커서 60% 정도가 다르다고 본다.

우리의 농어는 일제강점기에 정립이 되었는데 분단 뒤 남쪽에서는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나 변화를 겪었고 북쪽에서는 상대적으로 변화를 덜 겪어 차이가 점점 벌어진 것이다. 입말은 통역이 필요할 정도까지는 아닌데 수어는 통역이 필요하기도 해서 ‘감사합니다’가 ‘김치’로 둔갑하기도 한다. 같은 땅에 사는 청인(廳人)과 농인 사이에도 의사소통이 어려운데 서로 다른 땅에 사는 이들끼리는 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모두가 김치를 먹으며 조상이 발전시킨 음식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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