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前 서울대 교수

 

노동절 때 들려오던 라틴 음악

가장 많았던 가사는 ‘코라손’

 

컴퓨터·스마트폰 넘치는 시대

서로 마주 보는 시간 많이 줄어

 

소통할 때조차 감정 표현 안 해

바쁜 세상 하트의 풍부함 절실

미국에서는 매년 9월 첫 월요일이 노동절이다. 공휴일이라 토요일부터 사흘 동안 연휴를 즐길 수 있다. 노동조합 등에서 행진 같은 공식 행사를 하기도 하지만, 가족이나 친구들과 집에서 파티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이웃집에서는 오후부터 파티 음악이 부드럽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침 햇빛이 강하지 않아 오후 늦게까지 정원을 가꾸는 내내 음악을 들었다. 스페인어로 부르는 남미풍 라틴 음악이었다.

학창 시절 스페인어를 열심히 공부했고, 지금도 가끔 쓸 일이 있어 가사의 뜻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가장 많이 귀에 들린 단어는 ‘corazón’(남미 스페인어 발음으로 ‘코라손’)이었다. 한국말로는 ‘마음’으로 옮길 수 있는데, 스페인어에서 자주 쓴다. 한국어의 ‘마음’처럼 의미가 넓고 깊은 말 가운데 하나다. 마음과는 다른 의미도 있다. 심장이라는 해부학 용어로도 쓴다. 예를 들면, 심장마비를 뜻할 때도 코라손이 등장한다. 기독교에서 자주 쓰는 ‘성심’의 뜻도 있다. 하지만 일반 대화나 음악에서 등장하는 코라손은 대부분 감정을 드러내거나 동정심을 담고 있다. 즉, 마음의 표현이다. 여기에 더해 용기를 뜻하기도 한다. 가장 흥미로운 용법은 애칭으로 쓴다는 점이다. 한국어로는 ‘자기야’에 가까운 느낌이지만, 연인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자주 쓴다.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음악에서는 주로 사랑하는 사람을 표현하거나 애칭으로 사용했다.

한국어를 처음 공부할 무렵 ‘마음’에 대해 특별하게 다룬 적이 따로 없었다. 한국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배웠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한국어를 처음 배우던 무렵 마음을 사용하는 표현 가운데 ‘마음이 아프다’를 배웠다. ‘마음을 먹다’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신기하다고 여겨졌다. ‘마음에 들다’도 일찌감치 배웠다. ‘좋아하다’와의 차이를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조금 지난 뒤 ‘마음에 들다’가 자연스럽게 감정이 이루어지는 느낌을 뜻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음과 코라손은 차이가 있지만, 사용빈도로만 보면 비슷할 듯하고, 특히 K-팝과 라틴 음악을 한 시간씩 듣고 있노라면 두 단어가 매우 잘 들릴 것이다.

나의 모어인 영어는 어떨까? 영한사전에서 ‘heart’(하트)를 찾으면 ‘심장’과 ‘마음’이 먼저 나온다. K-팝 팬덤의 영향을 받아 손으로 만든 하트 제스처도 나왔다. 영어는 마음과 코라손과 비슷하게 표현하는 내용도 매우 풍부하다. 예를 들면 ‘My heart goes out to you’(마음이 아프다)는 깊은 동정심을, ‘In your heart of hearts’(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진심을 드러낸다. ‘Sweetheart’(스위트하트)는 코라손처럼 자주 사용하는 애칭이다.

한국어·스페인어·영어뿐만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언어가 마음에 해당하는 단어를 사용해 감정을 표현한다. 관용적인 표현도 매우 많다. 9월의 어느 날 오후, 이웃집 파티장에서 흘러나오는 라틴 음악에서 엄청나게 자주 나오는 코라손을 들으며 ‘마음을 표현’하는 행위의 빈도에 대해 생각했다. 최근 미국 영어에서는 그 빈도가 확연히 줄어든 것 같다. 한국어 역시 영어만큼은 아니지만, 예전보다 훨씬 덜 사용하는 것 같다. 언어의 사용 양상은 변화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마음을 표현’하는 빈도가 줄어드는 이유가 궁금했다.

명확히 결론 내릴 수는 없지만, 21세기 들어 크게 두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사람과 대면하는 시간이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줄었다. 일·공부·휴식·오락 등 일상생활 속 거의 모든 행동은 기계 화면을 보면서 이루어진다. 한국의 경우, 아파트가 주거 양식의 주류가 되면서 집 안에서도 개인 공간이 만들어졌고, 그로 인해 가족 간 대화도 현저히 줄었다.

‘마음 표현’은 말 그대로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기 때문에 글보다 대면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때 주로 쓴다. 시나 소설처럼 표현력이 풍부한 문장도 있지만, 사람들이 마주 보며 쓰는 보통의 말은 간결해졌고 감정의 표시는 특정 표현보다 이모티콘을 통해 전달하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다. 물론 하트 이모티콘 역시 마음 표현의 하나로 볼 수도 있지만, 의미가 명확하지 않고 개인에 따라 받아들이는 바가 크게 다르기 때문에 표현이라기보다 그림문자의 감탄사 정도로만 여기는 게 맞다.

또 하나의 원인을 들자면, 얼굴을 마주하고 소통을 할 때조차 예전에 비해 감정을 표시하지 않는 게 미덕처럼 여겨진다는 점이다. 한국과 미국은 문화가 서로 다르지만 이런 추세는 비슷하다. 감정을 전혀 표시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한정된 범위 안에서만 드러내고 개인의 마음을 나누기보다 전체적으로 유쾌한 분위기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의미가 명확한 이모티콘은 전체적인 분위기를 가볍게, 귀엽게, 유쾌하게 하는 데 시각적으로 쓸모 있는 도구라 자주 사용한다.

어쩌면 한국과 미국에 비해 남미의 문화는 아직 대가족 문화가 여전하고, 온 가족이 모여 파티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코라손을 사용할 기회가 많은 것은 아닐까. 이웃집의 파티는 끝났지만, 그다음 날 정원에서 시든 장미의 꽃잎을 떼어내면서 이 바쁜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은 마음과 코라손, 그리고 하트의 풍부함이 아닐까 하고 문득 생각했다.

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前 서울대 교수
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前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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