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영 체육부 차장

지난 4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가 이례적으로 강력한 경고문을 발표했다. 선수협은 “SNS에서 발생하는 피해 사례가 준(準)형사범죄 수준에 이를 만큼 심각하다”며 “앞으로 피해 선수들을 대신해 법적 절차를 대리 진행하겠다”고 천명했다.

선수협이 직접 ‘법적 대응’을 언급한 것은 SNS상 언어폭력이 더는 묵과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최근 A 구단 소속 한 선수는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으로 “내가 너네 가족을 찾아가 죽인다. ××××야”라는 협박성 메시지를 받았다. 이 선수뿐 아니라 다수의 선수들에게 여자친구, 배우자, 자녀까지 거론하며 성적 모욕과 위협이 쏟아지고 있다. 어떤 선수의 부모에게는 “저런 아들을 낳은 게 죄”라는 막말까지 날아들었다.

실제로 선수협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SNS에서 악성 메시지 피해 대상은 선수 본인(49%)에게 그치지 않고 부모(31%), 배우자·여자친구(13%)까지 무차별적으로 번지고 있다. 이러한 SNS 언어폭력은 선수들에게 정신적 스트레스(36%)로 작용했고, 경기력 저하(14%)와 수면·식욕 저하(11%)로도 이어졌다. 심지어 은퇴나 이적을 고려한 경우도 4%나 됐다. SNS 언어폭력이 선수의 인생과 커리어를 송두리째 흔드는 수준이다.

과거와 달리 선수들에게 직접 닿는 창구는 많아졌다. 특히 포털사이트 기사 댓글이 사라지면서, 선수 개인 SNS DM이 악플러들의 주된 공격 수단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부계정·가계정이 늘어나면서 신분을 감춘 채 욕설을 퍼붓는 사례가 많아졌다.

악성 언어폭력은 선수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야구장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치어리더들을 향해 ‘단정치 못한 옷차림’이라는 근거 없는 악의적 비난부터 사생활 침해, 외모 품평, 성희롱성 발언까지 이어진다. 치어리더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특히 그들은 건전한 야구 문화를 만드는 소중하고 빛나는 조연이지만, 악성 메시지는 이들의 자존감까지 거세게 위협한다.

프로야구는 지난해 국내 프로스포츠 역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올해는 사상 최초로 1200만 관중 돌파가 유력하다. 이 성과는 선수들의 땀, 치어리더의 헌신, 팬들의 열정이 합쳐진 결실이다. 그러나 온라인에 깊숙이 뿌리내린 언어폭력은 이런 성과를 무너뜨릴 수 있는 심각한 병폐다. 수백만 관중이 만든 성과가 일부 팬의 일탈로 스스로 갉아 먹히는 셈이다.

해외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악플 가해자에게 경기장 출입 금지 명령을 내리고,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는 구단 차원의 블랙리스트 제도를 운영하며 강력히 대응한다. 선진 리그는 이미 ‘악플은 범죄’라는 인식을 제도화했다. 국내 프로야구 역시 단순한 경고를 넘어 실제 법적 처벌과 출입 제한 등 실효성 있는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응원은 뜨겁되, 비판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성적 부진에 대한 냉정한 지적은 언제든 충분히 허용된다. 그러나 ‘팬심’이라는 이름으로 선수의 인격을 짓밟는 협박과 가족을 향한 저열한 욕설은 결코 팬심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노골적인 범죄다.

정세영 체육부 차장
정세영 체육부 차장
정세영 기자
정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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