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동 논설위원
검찰 없애면서 ‘개혁’ 운운 궤변
수사·기소 분리 세계 추세 아냐
특검·공수처는 수사·기소 행사
적개심에 눈 멀거나 잘못 판단
정권 말·교체 대비 후환 없애기
李 퇴임 뒤의 재판리스크 제거
여권이 정부 수립 이후 78년간 유지돼온 검찰청을 폐지하는 등 국가 형사사법체계를 근본부터 뒤집는 일을 추진하면서 입에 달고 다니는 게 ‘검찰개혁’이다. ‘검찰 해체’ ‘검찰 죽이기’를 하면서 ‘개혁’이라고 하는 것부터 어불성설이다. 내란특별재판부, 법관 평가제, 대법관 26명으로 증원 등 삼권분립과 재판 독립성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태도 사법개혁이라고 주장하는 마당이니, 말의 오염이 이만저만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의 검찰 해체 방안은 검찰청을 폐지하고 수사권은 행정안전부 산하에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들어 넘기며 기소·공소유지는 공소청을 신설해 맡긴다는 게 핵심이다. 한 기관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가지면 안 되고, 세계적인 추세에도 역행한다는 명분인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미국·일본은 물론이고 독일·프랑스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검사가 수사·기소권을 함께 행사한다. 여권의 주장은 자가당착인 게, 특별검사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기소권 동시 행사는 왜 옹호하고, 외려 더 강화하겠다는 건가.
여당 안은 효율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공소청 검사는 1차 수사기관(경찰·국가수사본부·중수청)의 수사 과정에 전혀 개입하지 못하고, 송치된 사건을 서류만 보고 기소·불기소 판단만 하라는 것인데 뇌물·경제·조직·방위산업 범죄 등 조금만 복잡한 사건이면 재판에서 유죄를 받기 어려워진다. 검사가 수사 내용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수사기관의 영장청구·기소 대행 기구로 전락하면 ‘거악 척결’은 고사하고 웬만한 범죄자도 처벌하기 어려워진다. 검사의 수사 지휘를 받지 않고 수사관만으로 구성된 중수청의 수사 능력도 불문가지다. 매년 200억 원대의 혈세를 쓰면서 실적은 잘 띄지 않는 공수처가 중수청의 미래다. 경찰, 중수청 등이 공소청으로 사건을 송치하지 않고 ‘암장(暗葬)’해버리면 범죄 피해자는 구제받을 길도 없어진다. 가히 ‘피해자 지옥, 가해자 천국’이 열리는 것이다.
민주당이 국민적 동의나 야당과 합의도 없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치’를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처리한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졸속 개혁이 되지 않도록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라”라고 한 지시가 빈말 또는 헛말이 되는데도 대통령실은 이상하게 조용하다. 이 대통령이 정청래 대표 등 여당에 현저하게 파워게임에서 밀리고 있거나 ‘굿 캅, 배드 캅’ 역할 분담을 한 것이다.
수사·재판 지연 등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되는데도 두려워 않고 형사사법체계 붕괴 실험에 용감하게 뛰어든 여권 인사들은 크게 4개 범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수사·기소권 분리가 옳고 국민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잘못 판단했을 경우다. 정부·여당 관련 범죄에 소극적으로, 전 정권 비리에 지나치게 엄하게 수사해온 검찰의 흑역사 탓이 큰데, 이는 검찰 제도 본연의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이 좌지우지하는 검사 인사권 개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둘째, 검찰에 대한 적개심에 눈이 멀어 ‘빈대를 잡을 수 있으면 초가삼간 다 태워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부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줄기차게 진행해온 강경지지자들의 선전선동에 눈이 멀어 충분히 예상되는 수사 지연, 범죄 피해자 구제 지체 등 부작용에 애써 눈을 감는 것이다.
셋째, 검찰에 대한 두려움을 심각하게 느끼는 인사들이다. 문재인 정부 때 드러났듯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조직이 검찰이다. 공수처와 경찰 국수본은 의지와 능력 모두 걱정할 바 없지만, 검찰은 무섭기 때문일 것이다. 정권 말이나 정권 교체 후에도 발 뻗고 잘 수 있게 미리 후환을 없애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대통령 5년 임기를 마친 뒤 재개될 선거법 위반·대북송금·대장동 등 5개 사건 재판에 대비해 위험한 싹을 미리 잘라버리는 기획자일 수도 있다. 임기가 끝나는 2030년 6월 이후 재판이 다시 열려도 검찰이 없으면 유죄 나기가 어렵다. 수사했던 검사들이 대부분 떠나고 없고 서류만 가진 공소청의 공판 검사가 공소를 재개한들 별 위협이 되지 못할 것이다.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4
- 좋아요 1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