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회의 뒤집어보는 상식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사진). 오스트리아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로, 프랑스로 시집와 베르사유 궁에 입성했다. 그녀는 사치와 음모의 중심에 있다는 비난을 받으며 민중과 멀어졌다.

앙투아네트의 인기가 추락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외국인이라는 출신 배경, 또 다른 하나는 끝없는 낭비벽이었다. 이로 인해 민중 사이에는 불쾌한 유언비어가 퍼졌고,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라는 말이었다.

이 발언은 오랫동안 무지하고 오만한 왕비의 상징으로 회자돼 왔다. 하지만 실제로 앙투아네트가 그런 말을 했다는 증거는 없다. “빵이 떨어졌다면 왜 브리오슈를 먹지 않는가?”라는 문장이 와전된 것이다. 브리오슈는 버터와 달걀을 넣어 만든 달콤한 빵으로, 식량이 부족한 시절 서민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사치품이었다. 더 나아가 이 에피소드 자체가 아예 꾸며낸 이야기일 가능성도 크다. 같은 구절은 이미 17세기 루이 14세의 왕비나 다른 외국인 공주들에게서 반복적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표현이 앙투아네트에게 주홍글씨처럼 따라붙는 것은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혁명 전야의 프랑스는 불평등과 빈곤이 극심했고, 민중의 분노를 상징할 적절한 희생양이 필요했다. 그녀는 귀족적 허영의 대명사로 지목됐고, ‘빵 대신 케이크’라는 허구의 인용은 대중 선동에 최적화된 도구가 됐다. 결국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그녀의 대표 어록으로 굳어졌다.

역사학자들은 앙투아네트가 실제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민중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한 인물로만 규정하는 것은 과도한 평가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녀는 이미 ‘무지한 왕비’라는 낙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단두대 위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앙투아네트는 끝내 “케이크를 먹으라”는 이미지와 함께 기억됐다.

도서관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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