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김유담 - 입시
엄마의 역할
경미는 일주일치 사료 배합을 끝내고 축사를 둘러보던 중에 손아래 동서 현주의 전화를 받았다.
“응, 동서 별일 없지?”
“네, 형님 바쁘신가 봐요.”
목장갑을 벗으며 반갑게 전화를 받는 경미와 달리 정작 전화를 걸어온 현주는 목소리가 어두웠다.
“아니야, 지금 축사인데 시끄러우니까 사무실 들어가서 전화 받을게. 무슨 일이야?”
한참 머뭇거리던 현주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형님, 저 이번 아버님 제사는 참석이 어렵겠어요. 기영이 특목고 대비 학원에서 입시설명회를 하는데 빠지면 안 되거든요.”
경미가 당황한 기색으로 되물었다.
“동서, 그게 무슨 소리야? 학원은 기영이가 다니는 거 아니야? 왜 기영이 학원 때문에 동서가 못 내려온다는 거야?”
“학원은 기영이가 다니는 게 맞는데요, 특목고 대비 입시 설명회는 학부모들이 듣는 거예요. 올해부터 고교 학점제 때문에 입시제도도 바뀐다고 하고, 미리 대비해야죠.”
경미는 현주의 설명을 듣고도 도통 이해가 어려웠다. 시부가 돌아가시고 두 번째로 맞는 기제사였다.
“죄송해요, 형님. 제 입장에선 돌아가신 아버님보다는 산 자식이 먼저일 수밖에 없네요. 형님 서운해하실 것 같아서 다른 핑계를 댈까도 생각했는데, 아시잖아요. 저 거짓말 못 하는 거.”
다른 불가피한 사정을 댔으면 덜 서운했으려나, 경미는 괜히 기운이 빠졌다.
“나도 축사 일이 바쁘고 해서 혼자는 힘든데, 자네가 와서 음식이라도 거들면 좋을 텐데……. 음식을 떠나서 이럴 때 아니면 또 우리가 언제 얼굴 본다고 그래.”
경미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제가 형님 고생하시는 거 왜 모르겠어요? 그래도 형님 댁은 물려받은 소 농장이라도 갖고 계시니 든든하시잖아요. 저희야 서울 올라와서 어렵게 공부하고 겨우 맞벌이하고 사는 형편이라 기영이한테 물려줄 재산도 없으니 공부라도 야무지게 시켜놓는 수밖에 없어요. 형님은 지방에 계시니 학군지에서 공부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실 거예요. 아이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고요.”
“그런가? 공부는 본인이 하는 거지. 나는 우리 수진이한테 따로 공부하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어.”
“그거야 지방이니까 그렇죠. 근데 수진이처럼 농어촌 지역에서 내신 잘 받는 게 오히려 입시에는 유리하겠더라고요. 수능 최저 등급만 맞추면 의대나 SKY도 쉽게 갈 수 있거든요. 기영이는 이제 지방 유학 가기도 늦어져서 특목고를 가든지 이 동네에서 무조건 승부를 봐야 해요. 수진이가 야무져서 알아서 하겠지만, 그래도 생기부 관리는 해주셔요. 벌써 고2잖아요.”
현주는 어려운 입시 용어를 줄줄이 읊어가며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경미는 그런 걸 엄마가 다 알아야 하느냐며, 동서가 너무 유난을 떠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형님, 시대가 변했어요. 넋 놓고 있다가는 애들 대학도 보내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니까요.”
경미는 넋 놓고 지낸 적이 없었다. 그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신했다. 6년 전 시부가 갑자기 쓰러지고 소 농장 일을 맡을 사람이 마땅치 않게 되자, 경미 부부는 귀농을 결정했다. 남편 정환이 다니던 건설회사가 실적이 악화되며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한 것도 귀농을 결심한 계기였다. 귀농 초기 연고 없는 시골에 내려와 적응하면서, 손에 익지 않은 농장 일을 배우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지만 이제 경미는 제법 농장 주인 티가 났다. 시부에게 농장을 물려받을 때 100두였던 한우가 300두로 늘었고, 부부가 합심해 연구를 거듭한 끝에 1등급 한우만을 출하하는 비법도 터득하게 됐다.
고맙게도 딸 아이도 시골 학교에 잘 적응했다. 6년 전 갓 사춘기에 접어든 딸을 전학시키면서 걱정이 컸는데 딸아이는 이곳 친구들과 잘 지냈고, 성적도 늘 상위권을 유지했다. 경미는 이만하면 성공한 귀농인이라는 자부심을 지녔다. 소 키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자식 농사 아니냐고, 소만 신경 쓰지 말고 아이 입시에도 신경을 쓰라는 동서의 일침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집 안팎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부분은 없다고 생각해 왔다.
딸 수진의 모의고사 등급과 내신 등급을 정확히 알고는 있느냐는 현주의 질문에 경미는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얼마 전 수능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아오긴 했는데, 원점수, 표준점수, 백분위 등 항목이 너무 많아서 뭐가 뭔지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학급석차 1등, 학교석차 3등만 보고 그저 흐뭇했던 기억이 났다.
그날 저녁, 학교에서 돌아온 딸에게 밥을 차려주며 넌지시 물었다. 마침 남편도 저녁 모임에 나가고 없는 날이라 모녀간에 편하게 얘기를 나눠볼 작정이었다.
“수진아, 오늘 서울 작은 엄마랑 통화했는데 너 공부 잘하고 있는지 묻더라. 그래서 내가 수진이는 늘 전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우리 딸은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했지. 그랬더니 너처럼 내신이 좋으면 농어촌전형으로 명문대는 물론 의대나 약대도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던데 작은 엄마 말이 맞아? 엄마 기대해봐도 되는 거야?”
“근데, 내신이 아무리 좋아도 수능 최저등급이 있어서.”
수진은 갑자기 성적 이야기를 꺼내는 엄마의 말에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며 말을 흐렸다.
“그래 맞아. 세 과목 합쳐서 5등급이랬나? 그렇게만 받으면 못 갈 대학이 없다던데?”
“그걸 제가 어떻게 맞춰요?”
수진이 갑자기 발끈하며 대꾸했다.
“왜? 우리 딸 공부 잘하잖아. 기영이는 중3인데 수능 모의고사 보면 영어, 수학이 1등급 점수 나온대.”
비교가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경미는 불쑥 사촌 기영 얘기를 꺼내 버렸다. 수진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건 기영이처럼 어릴 때부터 학원 많이 다닌 아이들 얘기죠. 수능 세 과목 합쳐서 5등급 나오려면 전 과목 평균 1등급 나오고 어쩌다 실수로 2등급 나오는 수준이 되어야 할 텐데, 이 동네에서 영어, 수학 수능 모의고사 1등급 나오는 애들은 아무도 없어요.”
“왜, 너도 너희 학교에서는 1등급이잖아.”
“그래 봤자 전국 모의고사로는 경쟁이 안 되는걸요.”
“에이, 해보지도 않고 경쟁이 안 된다고 하는 게 어딨어? 수능은 내년 11월에 보는 건데.”
“그걸 꼭 해봐야 알아요? 그럼 어디 엄마가 한번 해 보세요!”
수진이 버럭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러려고 성적 얘기를 꺼낸 게 아니었는데… 엄마가 너무 입시에 대해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부터라도 엄마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하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경미는 딸의 예민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다그치듯 대했다는 생각에 후회가 일었다.
수진은 저녁도 먹다 말고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경미가 먹던 밥이라도 먹고 들어가라고 문을 두드려도 방 안에서는 기척이 없었다.
경미는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나와 마당을 빙빙 돌다가 현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밤 9시가 넘은 시각, 현주는 기영이 다니는 수학학원 근처에 차를 대고 수업이 마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경미가 속상한 마음을 토로하자 현주는 다른 방법도 찾아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형님, 속상하시겠어요. 하지만 정 안 되면, 수능 최저등급 없는 곳을 노려봐야죠. 그럴수록 내신 점수랑 생기부가 더 중요하거든요. 수능 점수 없이도 갈 수 있는 학교도 찾아보면 괜찮은 곳들이 있으니 서울 올라오셔서 생기부 컨설팅부터 좀 받아보시고요.”
“동서는 아이 대학을 보내본 것도 아닌데 어떻게 입시에 대해서 이렇게 많이 알아? 나는 딸이 내년에 고3인데 너무 아는 게 없네.”
“아직 안 늦었어요.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해야죠.”
“응, 내 생각도 그래. 수진이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수능 등급 올릴 수 있을 거야. 오늘은 잔뜩 골을 내긴 했지만, 머리가 좋은 아이니까 나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거든.”
“에휴, 형님, 지금 수진이 얘기를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럼 누구?”
“형님요, 지금부터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열심히 공부하세요. 수진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최대치의 학교를 찾아내는 게 엄마가 할 일이니까.”
경미는 1등급 소를 키워내는 건 전적으로 농장주에게 달린 일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엄마의 노력이 아이의 수능 등급을 결정짓는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아이의 부족한 등급을 엄마의 정보력과 입시전략으로 보강할 수 있다는 말은 거북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아이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나 몰라라 외면하기도 어려웠다. 엄마의 노력이 아이의 입시 성패를 결정한다고, 경미는 소화되지 않는 말을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 곱씹고 또 곱씹었다.
부모의 ‘밀착 케어’가
자녀 수능 등급 가르는
부조리한 현실 고민을
■ 작가의 말
“경쟁을 완화하고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너무 과도한 짐을 지우는 것 같아요.”
사교육에 돈만 쓴다고 될까. 대한민국 대학입시에선 부모도 자녀 못지않게 노력해야 한다. 공부하고, 정보를 획득하고, 전략을 짜야 한다. ‘엄마의 역할’은 이러한 현실을 풍자한다. 김유담 작가는 “아직 아이가 어려서 실질적으로 입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주변 선배들이나 친척들 이야기, 강연이나 강의에서 입시에 예민한 10대들의 고민을 들으며 관심을 갖게 됐다”며 집필 동기를 밝혔다.
소설은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는 일을 1등급 소를 키워내는 일에 빗대 표현한다. 김 작가는 “나도 지방 출신이다. 농어촌 등 소외된 지역에서 입시 경쟁을 치러야 하는 학생들에게 관심이 많다”고 했다. 소설 속 ‘수진’은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도시 아이들과 ‘전국구 경쟁’에서는 높은 등급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 작가는 “부모의 ‘밀착 케어’를 받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차이의 격차가 입시 결과의 차이로 이어진다”면서 “농촌에서 소를 키우는 엄마와 학군지 엄마의 간극이 자녀들의 수능 등급으로 연결된다”고 꼬집었다. “이러한 현실이 고착화되는 문제를 소설을 통해 함께 고민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2016년 등단한 김 작가는 장편 ‘이완의 자세’ 등을 썼다. 소설집 ‘돌보는 마음’ 등이 있으며, 신동엽문학상, 김유정작가상을 수상했다.
박동미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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