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경제활동은 상대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보듯이 영원한 1등은 없다. 잠시라도 한눈팔면 경쟁력을 상실하는 것이 디지털 시대의 현실이다.

법제처가 주 4.5일 근무제를 골자로 하는 실노동시간 단축 법안을 연내에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한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근로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자는 취지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심각한 경제적 파장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특히,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지금, 근로시간 단축은 자칫 국가 경쟁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필자는 요즘 베트남을 자주 방문해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저녁이면 갈가에 넘쳐나는 젊은이들, 그리고 삼삼오오 모여 맥주를 마시며 시끄럽게 대화하는 걸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베트남은 지금도 주 6일 근무를 한다. 우리나라에선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방식이지만, 베트남 정부와 기업들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동남아 신흥국이라는 위치에서 세계의 투자 자본과 제조업이 몰려드는 이유 중 하나가 낮은 인건비와 상대적으로 긴 근로 시간이다. 이는 제조업 기반 국가로 성장해온 우리나라가 한 세대 전에 선택했던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베트남은 더 오래, 더 값싸게 일하는 시스템을 유지해 생산성과 수출 경쟁력을 높이면서 이러한 구조가 외국인 투자 유치를 가속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주 4.5일제를 도입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필자 역시도 노동시간을 줄이고 월급을 그대로 받을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 크게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월급을 주는 기업 입장에서 보면 산술적으로 10%의 생산성이 높아져야 가능한 일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된다면 국가적으로도 곳간은 점점 비어가고 나랏빚은 지금보다 더 가파르게 늘어난다. 빚쟁이 신세로 전락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채권자들이 채권을 회수하기보다는 남아 있는 자산으로 그 이자를 받을 수 있지만, 언제 원금을 회수해 갈지 모른다. 국제 정세는 냉혹하다. 외환위기를 경험하지 않았는가.

더 큰 문제는 국가 경제적 차원에서 생산성 저하와 소득 수준의 하락은 피할 수 없다. 최근 프랑스가 잘 말해준다. 프랑스는 재정위기가 심해지면서 국가부도 위기 우려마저 나오지만, 전역에선 긴축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까지 벌어지는 등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군중은 가끔 자신의 이익을 전체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개인주의 경향이 있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는 더 강해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속도와 시점이다. 인구 감소, 경기 침체, 기업 경쟁력 약화라는 삼중고 속에서 주 4.5일제는 시기상조이다. 오히려 국가적 혁신 체력을 끌어올리고, 다시 한 번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제품 경쟁력을 확보한 뒤에야 근로시간 단축 같은 복지적 안건이 차례차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선진국의 제도를 모방하기보다는 우리만의 산업 구조와 현실을 고려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주 4.5일제를 도입하게 되면 단기적으로는 근로자에게 입안의 사탕으로 ‘달콤함’을 줄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충치가 생겨 ‘국가 경제력 하락’이라는 뼈아픈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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