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의 열전에는 905년 궁예가 철원도성으로 천도하여 들어가는 부분에 ‘대궐과 누대를 수리하였는데 극히 사치하였다’라는 표현을 기록해 놓았다. 폭군 궁예의 천도를 나쁘게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삽입한 내용으로 보이는데, 그 기준은 철원도성 전의 수도, 즉 왕건이 건설한 개성 만월대의 궁궐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겠다.
만월대 궁궐의 정전인 회경전이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는 높은 곳에 있어 상당히 웅장하고 화려했을 것으로 가정하고 영상 이미지를 재구성한 역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는 잘못이다. 아무리 높고 크며 웅장하고 화려하게 만들어봤자 하늘 아래 우뚝 솟은, 하얀 화강암과 푸른 숲이 우거진 거대한 송악산(488m)의 이미지와 겹쳐지는 순간 높고 크며 웅장하고 화려하게 보일 리 없다. 그러니 만월대 궁궐의 건축물은 송악산과 합일된 느낌의 한계 안에서의 높음, 큼, 웅장함, 화려함만 구현해야 한다. 조선의 수도 서울의 경복궁처럼, 동일한 기능을 하는 다른 국가의 궁궐과 비교한다면 상대적으로 소박하고 담백했을 것이라 말해야 합리적이다.
궁예가 철원에서 가장 넓은 허허벌판의 한가운데에 건설한 철원도성 궁궐의 건축물은, 규모는 당나라의 수도 장안보다 작았을지라도 경향성으로는 웅장하고 화려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허허벌판의 평지에서 정말 초라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만월대의 궁궐과 비교하면 분명 사치스러웠다고 표현할 수 있어, ‘삼국사기’의 ‘대궐과 누대를 수리하였는데 극히 사치하였다’는 표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 표현은 궁예의 철원도성에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라의 궁궐 월성과 만월성, 후백제의 궁궐 동고산성의 건축물도 만월대의 궁궐과 비교한다면 훨씬 웅장하고 화려했을 것이기에 철원도성만 ‘사치스럽다’는 평가를 받으면 억울할 것 같다. 궁예의 철원도성 천도가 잘못됐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기록해 놓았다고만 보면 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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