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동권리옹호 Child First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 프로그램 ‘반짝이는 우리는 코다’
청각장애 부모를 둔 비장애 자녀
자기성장 기회박탈 ‘영 케어러’
그룹 체육활동·미술치료 받으며
우울감 덜고 정서적 안정 찾아
부모들에게도 심리·양육 상담
야외나들이 등 가족프로그램도
청각장애 어머니를 둔 A(11) 양은 토요일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신이 난다.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 가족돌봄아동지원 프로그램 ‘반짝이는 우리는 코다’ 일정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청각장애 부모를 둔 비장애 자녀, 이른바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 아이들이 한데 모여 체육 활동을 하고 속마음을 나누며, 성인 코다 선배의 진로 강연을 듣는 자리다. 흔치 않은 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만나는 이 하루는 A 양에게 큰 힘이 된다. A 양의 어머니 정모(45) 씨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들어하던 아이가 프로그램을 통해 먼저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며 “집에서 멀어도 한 회도 빠지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복지체계는 가족이 먼저 책임지고, 국가·지방자치단체는 뒷받침하는 성격이 강하다. 이 때문에 청각장애가 있는 부모들은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할 때 자녀에게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레 코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집안의 통역자이자 행정 업무 대행자 역할을 맡으며 또래 관계와 자기 성장을 위한 기회를 잃는다. 이런 ‘영 케어러(Young Carer)’ 부담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공적 서비스와 사회적 지원이 필수다.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정서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또래 커뮤니티 활동이 특히 중요하다.
이런 배경에서 시작된 것이 ‘반짝이는 우리는 코다’다. 한 개인 후원자가 2000만 원을 지정 기부하면서 2024년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코다 가정에 가장 필요한 3가지 축, 아동들을 위한 또래 모임·농인 부모들의 교류·가족 활동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됐다. 아이들은 코다라는 같은 정체성을 가진 또래 친구들과 함께 체육 활동을 하며 ‘아이다움’을 회복하고, 자조 모임을 통해 서로의 고민을 나눈다. 연극배우·기자·경찰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성인 코다의 강연을 들으며 자신의 미래를 넓히는 기회도 갖는다.
부모들도 아이들과 함께 변화를 만들어간다. 청각장애 부모들은 자조 모임에서 양육 고민과 교육의 어려움을 나누며, 수어로 진행되는 심리 상담을 통해 쌓였던 정서적 부담을 해소한다. 야외 나들이, 가족 체육활동, 가족캠프 등 부모와 아동이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역할을 나누고 목표를 함께 실천하는 연습도 한다. 이렇게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경험은 아이들이 영 케어러로서 짊어진 부담을 덜고 가족의 소속감과 유대감을 회복하는 데 큰 힘이 된다.
전문가와 함께하는 집단 미술치료는 아이들의 치유와 성숙을 전문적으로 지원한다. 우울 척도가 높아 집중 지원이 필요한 아동에게는 개별 치료 10회기가 추가로 제공돼 보다 맞춤형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와 부모 모두 변화를 보였다. 지난해 1차연도 평가에서 참여 아동 전원의 회복탄력성이 참여 전보다 평균 12.7% 향상됐다. 그룹 체육 활동으로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해소하고 협동심을 기르는 한편, 집단·개별 심리치료를 통해 감정 표현과 조절 기술을 배운 덕분이다. 올해 진행한 개별 인터뷰에서는 ‘새로 친해진 친구’ 이름을 적은 아동이 프로그램 초반보다 60% 이상 늘었다. 가족 의사소통 척도 역시 평균 16.2% 상승하며 가족 단위 참여가 빛을 발했다.
이런 변화는 가정 밖에서도 이어졌다. 다문화 가정의 B(11) 군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며 학교에서 점점 위축됐지만, 또래 코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신감을 되찾았다. 담임교사는 “표정이 밝아지고 수업 태도가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2년 연속 참여 중인 C(9) 양은 왜소증으로 상처받는 일이 잦았지만 개별 미술치료를 통해 우울감을 덜어냈고, 오빠 D(11) 군은 체육활동으로 정서적 안정을 되찾았다. 부모의 주말 근무로 동행이 어려운 날에도 남매는 스스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복지관을 찾는다.
코다 가정의 큰 성원에 힘입어 어느새 2년 차에 접어든 이 프로그램은 내년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복지관은 학교와 지역 수어통역센터, 병원·행정기관과의 연계를 넓혀 코다 가정을 더욱 촘촘히 지원할 계획이다. 수어·문자 통역을 전 과정에 배치해 접근성을 높이고, 부모 교육도 정보 제공에 그치지 않고 가정에서의 적용 방법을 함께 토론해 내년에는 더 질 높은 프로그램을 제공할 방침이다.
문화일보 - 초록우산 공동기획
김린아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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