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 최민호 세종특별자치시장
세종시는 흔히 ‘노무현의 도시’로 불린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국가균형발전을 이루고자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구상이 바로 세종시의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세종시는 국가 균형발전의 상징도시로 단단히 뿌리내렸다. 정부 부처와 국책연구단지를 품고 인구 40만 명의 어엿한 중견도시로 성장한 지금 세종시의 모습은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분권과 균형에 있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최근 세종시를 둘러싼 일련의 반민주적 의사결정이 ‘노무현 정신’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은 행정 효율성과 균형발전을 위해 정부부처를 세종에 집적시킨 세종시의 건설 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특정 지역 논리가 국가 전체의 운영 원리를 압도하는, 말 그대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노 전 대통령은 해수부 장관이던 2000년 부산시청에서 열린 시민대토론회에서 국가적 관점에서 해수부 부산 이전을 반대할 수밖에 없음을 논리적으로 설파했다. 주장의 요지는 해수부가 부산으로 단독 이전하면 부처 간 협의가 어려워져 행정 비효율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해양수산력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부산 출신 해수부 장관의 소신과 용단에 그 누구도 반기를 들거나 몽니를 부린 일이 없었다. 그러니 이제 와서 제대로 된 숙의 절차도 없이 해수부 이전을 슬그머니 추진하는 것은 노무현 정신에 반하는 결정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수립한 계획에 따라 건설된 세종보 역시 반노무현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4대강의 재자연화라는 허울 아래 멀쩡한 세종보가 제대로 사용되지도 못한 채 수장되기 일보 직전이다. 세종보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계획이 아닌 노무현 정부 시절 설계 기획된 보다. 단순한 수리 시설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수량 확보와 시민 생활의 기반과 맞닿아 있다. 그럼에도 환경부가 시민 의견을 들어볼 의지도 없이 환경단체의 강경한 목소리에 밀려 결정을 서두르고 있다.
해수부 및 산하 공공기관 이전과 세종보 철거에서 보이는 공통점은 명확하다. 중차대한 국가 정책의 향방을 정면으로 거스르면서도 절차적 민주주의는 부재하다는 사실이다. 시민 참여와 합리적 공론화 과정의 결핍은 노 전 대통령이 강조했던 민주주의 정신에 완전히 역행하는 일이다.
세종시는 특정 정권의 산물이나 전리품이 아니다. 이미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논쟁과 타협을 거쳐온, 한국 민주주의의 실험장이자 성과물이다. 민주주의 원리가 실제 제도와 공간 속에서 구현된 사례라는 점에서 세종시의 의미는 더욱 특별하다. 그런 세종시의 가치를 반민주적,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으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별 사안의 찬반을 넘어설 수 있는 민주주의 절차의 복원이다.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서 시민의 목소리가 균형 있게 반영되고, 시민과 정부가 신뢰 속에서 머리를 맞대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세종시에 담긴 노무현의 뜻을 잇는 일이자 우리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세종시는 노 전 대통령이 시작한 도시다. 동시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시험하는 도시다. 이 정신을 되새기고 지켜낼 때, 세종시는 비로소 그 존재 이유를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