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규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매년 세계 상장기업들에 대상으로 매출·이익·자산·시가총액 등 주요 지표를 종합해 순위를 매겨서 선정한 ‘포브스 글로벌 2000’ 리스트를 발표한다. 이 리스트를 보면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국가와 기업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3일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10년간의 이 리스트를 분석해 우리 경제에 경종을 울리는 결과를 내놨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글로벌 2000대 기업에 포함된 한국 기업은 2015년 66개에서 올해 62개로 약 6%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중국은 180개에서 275개로 50% 이상 늘었고, 미국 역시 575개에서 6% 이상 증가했다.
이 리스트에 포함된 한국 기업의 전체 매출액을 합산하면 2015년 1조4700억 달러에서 2025년 1조6900억 달러로 겨우 15% 정도 증가했지만, 중국은 95%나 늘었고, 미국도 63% 늘었다. 매출액 증가 속도를 보면 중국은 우리의 6배, 미국도 4배 이상 빠르게 성장했다. 기업별로 보면 지난 10년 동안 미국 엔비디아의 매출액이 약 30배 가까이 성장한 데 비해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는 겨우 1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한국 정부가 대기업에 대한 비합리적 규제를 계속해서 강화해 온 것에 대한 당연한 결과이다. 한국에서는 매년 5월이면 국내총생산(GDP)의 0.5% 이상에 해당하는 자산총액을 가진 기업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해 발표한다.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집단으로 분류되면 혜택보다는 새로운 규제가 훨씬 많아진다. 먼저, 해당 기업에 대해 동일인 또는 총수를 지정하며,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에 대해서도 규제를 받는다. 금융 및 보험회사의 국내 계열회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고,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이익을 제공하는 행위, 상법상 공시의무가 없는 대기업집단 소속 비상장사에 대한 공시제도, 대규모 내부거래 의결에 대한 공시제도 등 모두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기업에 대한 법적 규제가 기업의 크기에 비례해 늘어나는 구조여서 한국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으로 기업을 키우면 망한다는 말조차 나온다. 대한상의 관계자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비율도 1∼2%에 불과하다고 한다. 정부의 기업 규제는 불합리한 행위들을 견제할 수 있도록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특히, 글로벌화 현상으로 전 세계 기업이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다른 나라의 규제와 비교해서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저해하지 않아야 한다.
정부 규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최근 프랑스와 영국의 경제가 힘들어지고, 반대로 이탈리아 경제가 견고해진 현상이 잘 보여준다. 2008년과 2010년 유럽 재정위기 이후 이탈리아의 실업률은 높은 공공부채와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 속에서 13%에 이르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2014년 마테오 렌치 총리와 2023년 조르자 멜로니 총리의 강도 높은 노동시장 개혁으로 현재 이탈리아는 지난 30년 이래 최저 실업률을 기록하면서 영국·프랑스와는 현저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의 현명한 판단과 노력이 그 나라의 경제는 물론 세계적인 대기업을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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