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 주민과 공존하는 영월 상동고 야구부

 

선수 40명중 대부분 외지 출신

명문고 대신 합숙하며 새활로

 

2023년 학교 지키기 위해 창단

올해 청룡기서 사상 첫 16강행

 

투수 임종훈, 첫 프로선수 지명

지역 주민들 열성적 지원 성과

상동고 야구부 선수들이 지난 24일 강원 영월군 상동읍의 상동고 텃밭에서 지역 주민이 기부한 무와 배추, 가지 등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박윤슬 기자
상동고 야구부 선수들이 지난 24일 강원 영월군 상동읍의 상동고 텃밭에서 지역 주민이 기부한 무와 배추, 가지 등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박윤슬 기자

영월=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

지난 23일 오후 강원 영월군의 영월덕포야구장. 그라운드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던 상동고 야구부에 깜짝 선물이 도착했다. 포도 10상자였다. 한 동문 선배가 땀 흘리며 연습하는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준비한 선물. 잠시 휴식 시간이 주어지고, 선수들이 받은 포도는 달콤했다. 선수들은 연신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씩씩한 웃음을 지었다.

짧은 휴식이 끝나고 훈련이 이어졌다. 박주영 코치의 “하나, 둘, 셋!” 힘찬 구령이 야구장에 울려 퍼졌다. 외야에서는 선수들이 피칭머신에서 나오는 플라이볼 타구를 몸을 날려 잡으며 수비 훈련에 집중했다. 또 다른 한쪽에선 봉민호 코치가 투수들을 꼼꼼하게 지도했다. 그늘막에 모인 지역 주민들은 흐뭇한 미소로 “야구부가 1년 전과는 너무나 달라졌다. 이젠 성적까지 내는 기특한 선수들”이라며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1953년 개교한 상동고는 강원 영월군 상동읍의 유일한 고등학교. 상동읍은 광산 덕에 “지나가던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말까지 돌았지만 광산이 문을 닫은 뒤 인구가 급격히 줄었다. 현재 주민 수는 1000명 남짓으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인구절벽 지역 중 하나다.

상동고는 3000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했지만, 1990년대 이후 광산이 멈추자 인구 유출이 가속화되면서 2022년 전교생은 3학년 3명뿐이었다. 학교는 사실상 폐교 직전에 내몰렸고, 교정은 비었으며 주민들조차 “이제 학교가 문을 닫겠구나”라며 고개를 떨궜다.

그러나 주민들과 동문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2023년 8월 “학교를 지켜내자”는 간절한 마음이 모여 야구부 창단으로 이어졌다. 상동읍 출신 동문 선배들이 먼저 나섰고, 영월군과 강원교육청이 발 빠르게 지원에 나섰다. 양승호 전 롯데 감독 등 프로야구계 인사들도 힘을 보탰다. 그렇게 상동고는 야구부를 둔 자율형 공립고로 재탄생했다.

지난 24일 상동고 야구부 선수들이 폐지 수거를 돕고 있다. 박윤슬 기자
지난 24일 상동고 야구부 선수들이 폐지 수거를 돕고 있다. 박윤슬 기자

현재 상동고 야구부는 40명으로 꾸려져 있다. 30명 가까이는 외지에서 모여든 선수들. 타 지역 중학교에서 스카우트된 선수들은 부모 한 명과 함께 전입신고를 마치고 상동고가 있는 영월군 상동읍에 정착했다. 이들은 야구 명문고 진학은 놓쳤지만, “상동고에서 더 열심히 실력을 갈고닦아 프로에 가겠다”는 각오로 뭉쳤다.

야구부 창단 이후 마을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주민들 대부분이 떠난 뒤 한동안 적막이 감돌던 폐광촌은 이제 상동고 야구부 선수들의 구령과 웃음소리로 채워지고 있다. 23일 상동읍에서 만난 주민들은 “선수들이 덤프트럭이 지나가도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한다. 그만큼 인사성이 밝다. 우리 아이들이 정말 예의가 바르다”며 환하게 웃었다.

성과도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지난해 5월 상동고는 고교 메이저 전국대회인 황금사자기 대회 1회전에서 창단 1년 만에 첫 승을 거뒀다. 올해 여름엔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사상 처음 16강에 진출했다. 하나로 똘똘 뭉친 선수들은 서울의 명문고와 경기에서도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아마야구계에서는 상동고의 선전을 ‘기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달 17일에는 투수 임종훈(3학년)이 2026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두산의 7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24일 찾은 상동고 교문 앞 전자 전광판에는 ‘임종훈 두산 베어스 입단’이라는 문구가 선명히 빛나고 있었다. 임종훈은 “상동고에 오지 않았다면 이런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프로 무대에서도 당당하게 서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2학년 후배 투수 정곤휘는 “선배가 프로에 지명된 걸 직접 보니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더 열심히 해서 반드시 뒤를 잇고 싶다”고 말했다.

백재호 상동고 감독의 얼굴에는 요즘 웃음꽃이 피어 있다. 전국대회 16강 진출에 이어 임종훈이 프로 지명을 받으면서 상동고의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그 여파로 최근에는 입단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중학교 시절 준수한 성적을 거둔 선수들까지 “상동고에 진학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오면서, 앞으로 선순환 구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상동고 야구부의 성장을 이끈 백 감독은 “처음엔 캐치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던 선수들이 많았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그래도 전국 무대에서 실력을 겨룰 수 있는 팀이 된 것 같다”면서 “지역에서 보내주신 성원과 관심 덕분에 선수들이 흔들리지 않고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백 감독의 말처럼, 상동고 야구부의 또 다른 힘은 든든한 지원이다. 상동고에 진학하면 전지훈련비나 사교육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영월군이 필요한 비용을 책임지고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매년 2억∼3억 원의 예산이 투입돼 선수들이 안정된 환경에서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전용 버스다. 원래는 원정이나 전지훈련 때마다 대형버스를 렌트해야 했지만, “매년 몇천만 원씩 쓰지 말고 차라리 버스를 구매하라”는 최명서 영월군수의 제안과 지원이 이어지면서 자체 버스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상동고는 강원도 고교 야구팀 가운데 유일하게 전용 버스를 보유한 학교가 됐다.

상동고 선수들은 언제 어디서든 안정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고, 이는 곧 훈련과 경기력에도 긍정적인 힘이 되고 있다. 경기 수원에서 왔다는 1학년 학부모는 “아이를 상동고에 보내면서 가장 안심이 되는 건 돈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점”이라며 “사교육비 부담 없이 오롯이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최명서(오른쪽) 영월군수와 올해 신인드래프트에서 두산에 지명된 상동고 투수 임종훈이 지난 23일 강원 영월군 영월읍의 영월군청 군수실에서 두산 유니폼을 입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영월군청 제공
최명서(오른쪽) 영월군수와 올해 신인드래프트에서 두산에 지명된 상동고 투수 임종훈이 지난 23일 강원 영월군 영월읍의 영월군청 군수실에서 두산 유니폼을 입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영월군청 제공

선배와 주민들의 정성은 각별하다. 주민들은 배추와 무를 팔아 얻은 돈을 흔쾌히 야구단에 전달한다. 최근엔 상동고 앞에 거주하는 신경희 씨가 폐지를 주워 모은 돈 300만 원을 학교에 전달했다. 신 씨는 “일부러 선수들이 밥을 먹으러 가는 시간에 집에서 나와 본다. 야구도 잘하고, 활력 넘치는 마을을 만든 우리 예쁜 손자들”이라며 활짝 웃었다. 이뿐 아니다. 23일엔 모교 동문 선배가 직접 발로 뛰어 지역 시멘트사의 사회 발전 기금에서 야구용품 지원비 1500만 원을 받아냈다.

작은 시골 마을 상동의 야구부는 이제 영월군 전체의 자랑이 됐다. 상동고 야구부는 상동읍을 넘어 영월군에서 모인 정성들이 선수들의 유니폼과 장비가 되고, 전지훈련 경비가 됐다. 상동고 야구부는 말 그대로 지역이 함께 키운 팀이다. 폐교 위기에서 기적을 써내려간 상동고 야구부. 상동고 선수들의 도전은 영월을 넘어 한국 고교야구에도 울림을 주고 있다.

최 군수는 “상동고 야구부가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군과 군민들이 함께 힘을 보태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마음껏 꿈꾸고, 더 큰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세영 기자
정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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