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지가 가라앉은 뒤
루시 이스트호프 지음 | 박다솜 옮김 | 창비
세계 곳곳에서는 늘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재난이 벌어진다. 사건 현장은 수습됐지만 사람들의 삶은 회복됐을까. 저자는 9·11 테러, 인도양 지진해일, 코로나19 팬데믹 등 여러 사고 현장을 누빈 재난 복구 전문가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재난 복구와 남겨진 자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1989년 집 인근에서 일어난 힐스버러 참사를 계기로 재난 전문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영국 잉글랜드에 있는 스타디움에서 축구팬 94명이 압사하고, 3명이 사고 후유증으로 숨진 사고였다. 열 살이었던 그는 이웃 주민들이 입은 신체적·정신적 피해는 물론 그들을 향해 유언비어가 퍼지는 상황을 보며 마음 아파했다. 당시 아버지는 말했다. “누구든 해결을 해야지.”
종종 이런 유언비어는 특정 인구 집단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서 비롯된다. 힐스버러 참사에서 모든 원인을 훌리건 탓으로 돌리거나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중국인들을 비난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저자는 재난 현장에서 국가와 정부 기관이 쉽사리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며 그로 인해 손가락질받는 대상은 이들이 저버린 지역사회가 된다고 말한다.
나아가 재난 현장에서 유가족을 잘못 대하고 그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일은 늘 벌어진다. 신원 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잘못된 장소에 유가족 거처를 마련해 생기는 문제 등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삼풍백화점 붕괴부터 세월호와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까지 한국의 현대사에는 재난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다고들 하지만 많은 현장에서는 여전히 유가족을 향한 폭력적 시선과 거짓 소문이 고스란히 언론과 유튜브를 통해 퍼져 나갔다. 재난 복구에 대한 인식조차 없던 시기에는 유가족들이 머물 수 있는 시설조차 없었다.
재난을 겪은 모든 이에게 가장 힘든 일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현장을 떠나 가족과 소중한 일상을 누리거나 집 안에 굴러다니는 펜이나 칫솔 따위를 보고 유류품과 같은 브랜드임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일들 말이다. 364쪽, 2만2000원.
김유진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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