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치 마인드
로런스 리스 지음│조행복 옮김│책과함께
비판능력 미약한 청년들에
음모론 퍼뜨리고 믿음 강요
인권 공격하고 반대자 말살
유대인 학살이 대표적 사례
혐오가 판치는 현재와 유사
30년간 전범·피해자 만나
독일인의 집단심리 파헤쳐
영국 작가 로런스 리스의 ‘나치 마인드’가 출간됐다. 올해 초, 이 책이 영어권 국가에서 나왔을 때, 언론과 시민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우리 책으로 656쪽, 읽기에 만만치 않은 벽돌책이고, 다루는 질문도 묵직하다. “나치는 왜 인종학살이라는 범죄를 저질렀는가? 문화민족에 속한 사람들이 어떻게 역사상 최악의 잔학행위를 자행했는가? 그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의가 있는가?”
그런데도 이 책의 열독 현상을 일으킨 건 세 번째 질문 때문이었을 테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극우정당이 유럽 여러 나라에서, 심지어 ‘그 독일’에서조차 뚜렷한 세력을 확보했고, 독재자가 여기저기서 창궐 중이다. 혐오로 표를 얻고 폭력을 무기 삼는 이런 종족주의적 정치는 양식 있는 시민들의 마음에 저절로 나치를 떠오르게 했다.
나치를 사례 삼아 저자는 민주주의 국가가 극우 정치에 지배되고, 사람들이 나치식 종족주의에 굴복하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지 알려준다. 전쟁과 학살, 인간성의 전적인 파괴와 마멸이다. 이런 책이 처음은 아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나 아렌트), ‘파시즘의 심리 구조’(조르주 바타유), ‘파시즘’(로버트 팩스턴) 등 숱한 책이 파시즘의 정치 심리, 곧 멀쩡한 사람들이 어떻게 나치의 형편없는 선동선전에 넘어가 전쟁 광신도이자 학살 주체로 변질되는가를 다루고 있다.
BBC 다큐멘터리 전문가답게 저자는 지난 30년간 나치 전범과 피해자, 나치 치하에서 성장한 인물들 등으로부터 직접 축적한 방대한 증언 자료들을 바탕 삼아 나치 시대 독일인의 집단 심리를 파헤친다. 그의 무기는 뇌과학과 심리학의 최신 연구 성과다. 저자는 부정 편향, 확증 편향, 손실 회피 등 인간의 심리적 취약성을 이용한 나치의 집단 세뇌 기술을 능란하게 파헤친다.
이 책은 평범한 독일인들이 나치즘에 빠져드는 심리적 변화 과정을 열두 단계로 나눠 연대기적으로 서술한다. 처음 시작은 음모론이다.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의 패배 원인을 유대인과 좌파가 ‘등에 칼을 꽂아서’라고 주장했다. 대중의 분노를 특정 집단에 돌림으로써 복수심을 자극하려는 속셈이었다. 이어서 나치는 ‘그들과 우리를 구분’해서 사회를 둘로 쪼개고, 누적된 온갖 사회문제를 단박에 해결할 ‘영웅’을 기대하게 했다. 그는 장차 거짓, 폭력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골칫거리를 없애줄 것이었다.
이 얼토당토않은 생각에 매력을 느낀 건 청년들이었다. 나치는 비판 능력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쉽게 빠져드는 청년들의 마음을 교묘히 자극했다. 히틀러유겐트나 독일소녀연맹을 통해 그들은 불황으로 일자리를 잃은 청년들에게 소속감을 제공하고 권위에 대한 무조건 복종을 가르쳤다. 독일 엘리트들, 정치와 기업의 기득권 세력은 나치를 만만히 여겼다. 그들은 자기들 이익을 위해 그들을 이용하고, 맘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나치 집권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집권 후 나치는 가장 먼저 인권을 공격했다. 시민 자유를 해체하고, 반대자를 말살하는 통제 체제를 구축했다. 정치적·사회적 혼란에 지쳐 안정을 갈망하던 시민들은 이들의 정책을 쉽게 받아들였다. 총통이 된 히틀러는 종족적 순수성과 우월성을 근간에 둔 믿음을 강요하고, 유대인과 볼셰비키 등 적들의 위협에 관한 과장된 평가를 퍼뜨려 대중 불안을 자극했다. 이어 지속적 테러와 탄압으로 저항 세력을 분쇄해 공포와 맹신 상태로 사람들을 몰아넣었다.
그 끝이 학살에 동조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들의 등장이다. 나치는 종족주의를 강화해서 유대인 절멸 프로그램을 수용하게 하고, 가스실 스위치만 올리면 ‘멀리서’ 인간을 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살인에 관한 거부감을 제거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경제 붕괴와 대량실업 같은 불안을 자극해 대중의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나치가 될 사람이 따로 있지 않았다. 누구나 종족주의적 증오에 물들고, 집단적 광기에 빠질 수 있었다. 아우슈비츠 소장 루돌프 헤스가 보여주듯, 나치들은 자기 지식을 모두 동원해 유대인 말살을 합리화했다. 심지어 전후에도 그들은 자기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오늘날 나치즘은 인간의 심리적 취약성을 파고들면서 부활 중이다. 나치의 피해자인 유대인들이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저지르지 않는가. 그들은 식량을 찾아 헤매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저격하고, 학교에 드론을 보내 아이들을 학살 중이다. 누구나 나치가 될 수 있기에, 이스라엘은 21세기의 나치가 되어 있다. 저항하지 않으면 누구나 학살자가 될 수 있다. 저자는 야스퍼스의 말을 빌려 우리에게 경고한다. “일어난 일은 하나의 경고다. 그것을 잊는 것은 죄악이다. 그것은 계속 기억해야만 한다.” 656쪽, 4만3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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