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는 너무 길면 잘라야 하고 국수의 이름이 너무 길면 줄여야 한다. ‘음식의 언어’를 쓴 댄 주래프스키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사례 중 하나가 음식 이름의 길이와 가격의 상관관계이다. 서양의 음식점 메뉴판에 긴 이름으로 표기된 메뉴는 가격도 비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통찰은 한국의 식당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능한 한 짧은 이름을 지으려 할 뿐만 아니라 이미 있는 이름까지도 줄이려 하기 때문이다.
칼국수와 수제비, 그리고 물만두로 유명한 음식점이 있다. 손님이 몰리는 점심때는 종업원은 물론 손님들도 바쁘다. 손님이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을 받고는 큰 소리로 주방을 향해 외친다. 이마저도 바쁘니 자기들끼리 통하는 줄임말로 하는데 그 변화가 무쌍하다. 손님 넷이 와서 세 가지 메뉴를 각각 두 개씩 주문했다. 종업원이 이 주문을 어떻게 줄일까? 주변의 손님들은 다양하게 예측하지만 답은 상상을 초월한다. 4번 테이블에 쌍칼 양제비 두물! 손님은 두물머리의 조폭과 제비가 되어 버린다.
길고도 복잡한 음식 이름도 물을 건너오면 이 가위질을 면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름을 줄이는 기준은 엿장수 맘이라 가늠하기 어렵다. 긴 스파게티 면에 조개를 넣어 조리한 ‘스파게티 알레 봉골레’는 주요 특징인 ‘봉골레’로 줄어든다. 이렇게 줄이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이니 일본에 가서도 똑같이 주문하면 된다.
그러나 ‘스파게티 알리오 올리오 페페론치노’는 딴판이다. 우리는 마늘과 올리브 오일을 강조해 ‘알리오 올리오’로 줄이지만 일본에서는 매운 고추를 강조해 ‘페페론치노’로 줄인다. 그렇다면 스페인의 전채요리인 ‘감바스 알 아히요’는? 우리는 새우를 주요 특징으로 삼아 ‘감바스’로 줄이지만 일본에서는 마늘을 강조해 ‘아히조’로 줄인다. 엿을 먹으려면 엿장수 맘에 들어야 하듯이 엿장수 맘대로 줄인 음식 이름도 엿장수의 맘을 알아야 한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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