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가 사라진다고 해서 월세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란 우려는 기우다.”

2023년 전세 사기 공포가 극에 달했을 무렵 진보진영 한 부동산 전문가는 “월세라고 전세와 다를까. 월세도 오르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월세가 비싸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는 방식으로 가는 만큼 걱정하는 수준까지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로 답했다. 해외에는 월세만 있다고도 했다.

전세 사기 공포에 질려 있던 분위기를 틈타 전세제도가 사라져야 한다는 폐지론이 고개를 들던 때였다. 이 전문가는 전세 수요 유지의 주요 동력인 전세대출을 폐지해 전세 제도의 일몰을 유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년이 지난 현재 전세대출 문턱은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6·27 대출규제로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이 막혔고, 9·7 주택공급대책에 따라 수도권 1주택자가 받아갈 수 있는 전세대출은 3억 원에서 2억 원으로 1억 원가량 줄었다.

잇단 규제로 전세대출이 막힌 지금 전세 수요는 어떨까. 26일 한국부동산원 주간 전세수급동향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 수도권 전세수급지수는 100.2를 기록하며 올 들어 처음으로 100선 위로 올라섰다. 전세를 구하는 사람이 내놓는 사람보다 많아졌다는 의미다. 전세수급지수는 100을 초과할수록 공급 부족을, 100 이하로 내려갈수록 공급 과잉을 뜻한다. 여기에 다음 달 수도권 입주물량은 10년래 최저치로 전망돼 한정된 매물을 둔 경쟁은 더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월세 가격은 적정 수준일까. 전세의 월세화로 월세 시장 자체가 커졌고, 그 안에서는 매물들 간 가격 상승 경쟁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전세가 정말 수명을 다했다면 수요가 사라져야 한다. 문제가 있다고 해서 제도를 없애버리면 부동산 시장 전체가 요동칠 수 있고, 시장 왜곡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한국 부동산 시장에만 유일하게 존재한다지만, 수요가 없었다면 진작에 자연적으로 소멸됐을 것이다.

당장 집을 사기엔 목돈이 부족하고, 매월 지출이 부담스러운 서민이 몇 년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주거안정 기능을 의도적으로 없애는 건 임대차 시장 혼란만 부추긴다. 전세가 유발한 사회적 비용에만 초점을 맞춰선 안 되고 그 기능을 생각해볼 때다. 전세는 무주택자 내 집 마련의 중간과정으로써 ‘주거사다리’ 역할을 수십 년간 충실히 수행해왔음은 부정할 수 없다. 정부의 강압적인 개입이 불러온 폐단을 줄이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소현 기자
이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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