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헌법학

지금은 헌법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헌법학자의 눈으로 볼 때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여권 정치지도자들은 헌법 없는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지 의문이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이전에 입헌주의가 먼저 논란됐던 것은 헌법을 바로 세움으로써 비로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헌법에 의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은 민주주의는 혼란과 무질서 속에 침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헌법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특히 민주화운동 출신의 여권 정치지도자들이 헌법을 경시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헌법이야말로 그 제정·개정 과정을 통해 국민 의사가 결집된 최고규범이며, 곧 국민의 뜻이라고 봐야 하는데 어떻게 헌법을 경시할 수 있는가? 더욱이 헌법을 통해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와 제도들이 구체화되고 있는데, 이를 무시하는 것은 곧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을….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이던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선출된 권력이 임명된 권력보다 우위라는 주장을 폈다. 그런데 헌법에 담겨 있는 국민의 주권적 의사가 삼권분립과 사법부의 독립을 말하고 있는데, 입법부나 행정부가 이를 무시해도 된다는 것인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추미애 국회 법사위원장의 발언과 행동에서 보이는 사법부 경시도 같은 맥락이다. 삼권이 대등한 지위에서 견제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은 헌법이 요청하는 당위이다. 즉, 입법부나 행정부가 사법부 이상의 힘을 갖고 있더라도 이를 오남용해서 사법부를 압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국가의 과제로 명시하고 대통령에 대해서도 통일에 대한 의무를 규정한 헌법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남북한 2국가론을 주장하는가 하면, 여권 내에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규정한 헌법 제3조의 개정 주장도 나온다.

이러한 발언들은 헌법에 대한 무지 또는 무시에서 비롯된 것이며, 심지어 문제가 되는 헌법 조항을 개정하면 된다는 무책임한 태도는 헌법제정권력자이자 헌법개정권력자인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다. 개정하기 전에는 현행 헌법을 준수해야 할 뿐 아니라, 여권 고위층의 뜻대로 헌법이 개정될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과거 DJP 연대의 조건 중 하나가 내각제 개헌이었다. 그러나 반대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내각제 개헌은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그런데 여권에서 개헌안을 발의하면 쉽게 통과될 수 있을까?

현행 헌법은 개헌을 위해 국회 재적의원 3분 2 이상의 찬성을 요구한다. 그것은 51 대 49로 바꿀 수 있는 법률과는 달리 압도적 다수의 동의에 의해서만 헌법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설령 여야가 개헌에 합의하더라도 국민투표를 통과하지 못하면 결국은 실패한다.

시대에 많이 뒤떨어진 헌법의 개정 필요성은 분명하다. 그러나 헌법을 정부·여당의 입맛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헌법조차 존중하지 않는 정부·여당이, 국민의 통일에 대한 열망을 저버리고, 사법부를 압박하고 무력화하려는 개헌을 시도할 경우 실패할 것이고, 그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헌법학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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