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현 과학콘텐츠그룹 갈다 대표

 

여행, 생물학적 몸이 어느 곳으로

물리적 이동하는 것뿐만이 아냐

 

장소 생각하고 정보 내재화하면

본질적으론 여행과 다름없는 셈

 

나사의 화성 토양자료 등 보면서

필자도 ‘화성 여행’ 준비하는 중

프랑스의 문학평론가 피에르 바야르가 쓴 책 중에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이 있다. 여행이 무엇인지 그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2007년에 처음 출간(국내에는 2012년 출간)된 이 책의 지은이는 여행이 단지 생물학적인 몸으로 어느 곳에 물리적으로 가는 것만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은이의 주장을 내 방식대로 해석해 본다면 이렇다. 어떤 사람이 어느 곳에 대해서 생각하고 궁리를 하면서 정보를 모으고 그것을 자신의 콘텐츠로 내재화했다고 하면 그 사람은 물리적으로 여행하지 않았지만, 진짜 여행을 한 것은 아닐까. 여행하는 본질적인 이유에 대해서, 또 그 결과에 대해서 근원적으로 따져본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여행은 결국 내재화된 정보가 아닐까.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어느 날 저녁 친구 랠프 레이턴에게 불쑥 ‘투바’라는 작은 나라 이야기를 꺼냈다. 파인만은 ‘투바’라는 미지의 나라에서 온 우표를 모았던 이야기를 하면서 이 나라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고, 레이턴은 흔쾌히 동의했다. 파인만이 접한 투바의 우표는 삼각형이나 마름모 모양을 한 신기한 우표들이었다. 투바에서는 요즘도 그 나라와는 별 상관이 없는 서양 세계의 만화 캐릭터를 도안한 상업적인 목적의 우표를 발행하고 있다.

정작 파인만이 투바로 여행을 가야겠다고 결심을 한 이유는 엉뚱한 곳에 있었다. 투바의 수도 이름이 키질이었기 때문이다. 스펠링을 쓰면 ‘Kyzyl’이다. 모음이 하나도 없다! 파인만의 눈에 모음이 하나도 없이 구성된 이름을 지닌 수도를 가진 투바라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폭발한 것이다. 투바는 당시 소비에트연방에 소속된 외몽골 지역의 작은 공화국이었다.

파인만과 레이턴이 투바로 여행 가기로 의기투합했지만, 미국과 소비에트연방 사이의 냉전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었던 시기라 여행을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정보도 별로 없었다. 두 사람은 대학의 도서관을 이용해서 투바에 대한 정보를 집요하게 모았다. 심지어는 투바어를 직접 공부해서 투바인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차의 번호판에도 ‘투바’라는 단어를 넣었다. ‘투바의 친구’라는 모임을 만들어서 투바 여행 준비를 해나갔다. 두 사람은 투바를 방문하기 위한 초청장을 얻기 위해서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1988년 파인만은 투바 여행이라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암 투병 끝에 고인이 되고 말았다. 파인만이 죽은 이후 레이턴은 드디어 투바를 방문할 수 있었다. ‘투바: 리처드 파인만의 마지막 여행’은 두 사람의 투바 여행기다. 물론 파인만은 끝까지 투바 땅을 밟지 못했다. 그전에 고인이 되었으니까. 그렇다고 파인만은 투바를 여행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레이턴은 파인만과 함께 결국 투바를 여행하고야 말았다. 어쩌면 투바인보다 더 투바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이들일지 모른다. 그들이야말로 진짜 투바 여행자가 아닐까. 여행은 결국 목적지에 이르는 과정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에피소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오는 2030년대 말쯤 화성에 사람을 보내는 유인 탐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달에 사람을 다시 보내는 것이 당면 목표다. 1972년 크리스마스 무렵에 아폴로 17호를 타고 간 우주비행사들이 달에 다녀온 이후로 달에 다시 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미국 항공우주국은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먼저 달에 다시 갔다가 화성까지 가겠다는 정기적인 우주탐사 계획이다. 무인 탐사선은 이미 달에 갔다. 2020년대 말까지 달에 사람을 보내고 달 궤도를 도는 우주정거장을 만들고 달 표면에는 과학기지를 건설하는 것이 당면 목표다.

이와 함께 화성에서 퍼서비어런스가 모아 둔 화성 토양 자료를 지구로 가져오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2020년대 말과 2030년대 초반까지 화성에 무인 탐사선을 먼저 보낸 후 2030년대 말쯤 4∼6명 규모의 과학적 훈련을 받은 우주비행사를 화성에 보낸다는 것이 거시적인 화성 유인 탐사 로드맵이다. 화성까지는 6∼9개월 정도 걸리고 한 달 정도 머문 후 지구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장기적으로는 화성에 과학기지와 정착촌을 건설해서 지속가능한 화성 탐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민간에서는 일론 머스크가 자신이 개발하고 있는 스타십을 내세워서 독자적인 화성 이주를 꿈꾸고 있다.

나도 숨겨둔 꿈이 하나 있다. 화성 여행이다. 화성 표면에 처음으로 성공적으로 착륙해서 화성 사진을 지구로 보내왔던 바이킹 1호가 1976년에 보내온 희미한 화성의 노을은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2015년에 화성 탐사 로버 큐리오시티는 선명한 푸른색의 화성 노을을 찍어서 지구로 보내왔다. 화성의 푸른 노을을 보면서 나는 화성 여행이라는 꿈을 키우게 되었다. 물론 2030년대 말쯤 화성 유인 탐사 계획이 실현된다 해도 나한테까지 화성 여행의 기회가 주어질 확률은 거의 0이다.

하지만 나는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화성 여행’을 준비한다. 화성을 주제로 강연하고 글을 쓰면서 화성 정보를 나 자신의 콘텐츠로 내재화하고 있다. 누구보다 더 화성 이야기를 잘하면 나는 결국 화성을 여행하는 것이다. 수도 이름이 특이해서 투바 여행을 시작한 파인만과 레이턴처럼 나도 화성에서 푸른 노을을 보고 싶다는 사소한 바람에서 시작해서 화성 여행에 대한 나의 꿈을 키우고 있다. 여행이 결국 과정 그 자체라면 나는 이미 사소한 바람을 갖고 화성 여행에 나선 여행객이다.

이명현 과학콘텐츠그룹 갈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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