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네팔 공산당정권 ‘네포 베이비’

자기 무덤 파고 정권 붕괴시켜

韓 대기업 3∼4세 자원 軍 입대

 

공감 부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치인들은 갈수록 염치 외면

부끄러움 모르면 나라 망한다

삼성 이재용 회장의 장남 이지호(24) 씨가 해군 장교로 입대하는 장면을 보면서 네팔을 떠올렸다. 네팔은 25세 이하인 Z세대의 반정부 시위로 72명이 숨지고 공산당 정권이 무너졌다. 수도 카트만두는 분지다. 온통 3000m 이상의 산들이 에워싸 헬기 외에는 탈출이 어렵다. 이번에도 총리와 수뇌부 가족들이 군 헬기의 구조용 밧줄에 매달려 간신히 탈출했다. 속옷 차림으로 시위대에 붙잡힌 재무장관은 며칠 동안이나 이곳저곳 끌려다니며 얻어맞았다. 관저에서 외교장관 가족들이 무차별 구타당하는 영상도 충격을 던졌다. 권력자 집안의 소유로 알려진 최고급 힐튼호텔 역시 방화로 잿더미가 됐다.

네팔은 1인당 소득 1340달러의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 농업인구는 65%에 이르고 청년 실업률이 22%다. 해외로 떠난 근로자들의 송금이 전체 경제의 30%를 차지한다. 지난 17년간 네팔은 공산당 연립 정권이 지배했다. 마오쩌둥, 마르크스·레닌 등 추종 세력은 달랐지만 공통분모는 무능하고 부패했다는 점이다. 원조와 세금을 빼돌려 배를 채웠다. ‘네포 베이비’란 신조어가 있다. 족벌주의(nepotism)와 베이비(baby)의 합성어다. 부모 잘 만나 흥청망청하는 ‘금수저’다. 네팔 공산당의 네포 베이비들은 눈치 없이 SNS에 외제차와 명품 사진을 올리며 돈 자랑을 했다. Z세대 눈에는 ‘부패의 물증’이었다. 평소에도 SNS를 통해 선진국 젊은이들의 풍족한 삶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던 터였다. 여기에 공산당이 ‘조작된 영상’이라며 SNS를 전면 차단하면서 결정적 방아쇠를 당겼다. 돈 벌러 해외로 간 가족들의 얼굴을 SNS로도 볼 수 없게 되자 분노가 폭발했다. 네포 베이비들이 민심의 역린을 건드리며 제 무덤을 판 것이다.

지호 씨가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자원입대하는 사진은 오래 기억될 게 분명하다. 육군 사병의 두 배가 넘는 39개월간 복무하는 해군 장교다. 과거 주요 그룹 회장들은 병역 면제가 적지 않았다. 요즘은 HD현대의 정기선, 한화그룹의 김동관·김동원 등 주요 그룹 3∼4세들이 장교로 복무하는 경우가 흔해졌다. SK의 최민정 씨는 여성 해군 장교로 자원입대했다. 보기 좋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주요 그룹 회장들도 대중에 노출되는 자리에서 조심하는 분위기다. 전통시장에서 어묵과 떡볶이를 먹기도 하고, 출입국이나 주요 행사 때는 외제차 대신 제네시스나 팰리세이드를 자주 타고 다닌다.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다.

정작 대중의 표로 먹고사는 정치인들만 딴판이다. 갈수록 부끄러움을 모르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형사 법정에서 다투겠다더니 속옷 투쟁까지 벌이며 특검 조사나 법정 출두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면서 구속적부심이나 보석 심문에만 선택적으로 출석한다. 지난 7월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의 국회 텐트 농성 때도 아쉬운 대목이 적지 않았다. SNS에 올린 고급 웰빙 김밥과 스타벅스 커피 사진부터 눈에 거슬렸다. 서민적인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는 사진이 올랐다면 훨씬 공감을 얻었을지 모른다.

더 부끄러움을 모르는 쪽은 운동권 출신 진보 정치인들이다. 자녀의 표창장 위조 등으로 투옥됐던 조국 조국혁신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사면 직후 고급 고깃집에서 된장찌개 사진을 올려 ‘서민 코스프레’를 하다 눈총을 받았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희대·한덕수 비밀 회동의 가짜뉴스 헛발질로 유튜버보다 못한 선출 권력의 민낯을 보였다. 그런데도 정청래 대표는 “대통령도 쫓아냈는데 대법원장이 뭐라고…”라는 막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과거 유죄판결을 받은 민주당 인사들도 대거 “검찰 개혁을 하려다 표적 수사에 희생됐다”며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피해자 코스프레로 밑밥을 던지는 것이다.

그나마 네팔보다 한국이 부끄러움을 알고 있어 다행이다. 특히, 기업 3∼4세들의 바른 몸가짐에서 희망을 본다. 유독 정치만 부끄러움을 잊어간다. 옛말에 예(禮)·의(義)·염(廉)·치(恥)가 나라의 4대 기강이라 했다. 하나만 없어도 나라가 기울고, 둘이 없으면 위태롭게 되고, 셋이 없으면 뒤집어지고, 넷 다 없으면 파멸한다고 했다. 한국 정치는 염치가 실종된 시대다. 그렇다면 나라가 뒤집어지기 직전인데, 걱정이다.

이철호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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