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겐 적당한 소음과 최소화된 시각 환경이 필요한 것 같다. 과거 바닷가에 살 때 집에 온 손님이 파도 때문에 잠을 설쳤다 한다. 반면, 나는 대도시로 이주해서는 파도음이 들리지 않는 정적이 어색하게 느껴지곤 했다. 사람들마다 몸에 밴 ‘미소지각’이 있으며, 작가들에게도 중요한 모티브가 되곤 한다.
박서령의 수묵 해경은 빛과 어둠의 교차점, 즉 심적 거리 안과 밖의 가운데 있다. 바다와의 교감은 장엄하다가도 감미롭고, 무섭다가도 친근해진다. 물리적 거리를 둔 상태에서 지각하는 어둠 속 물결은 아름다움의 극치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둠에 갇혀 항해를 한다면 그 자체가 얼마나 공포스럽겠는가.
일견 바다의 표정은 지극히 평온하지만, 바람결 윤슬의 필치는 박진감이 넘친다. 어둠을 밀어내고 극적으로 등장하는 빛의 임재에 대한 감격의 몸짓이다. 비선형으로 움직이면서 굵기 변화가 많은 필선들이 감각적으로 조율되고 있다. 판각의 맛을 내는 흑백 2진법의 행간에는 무슨 이야기가 있을까.
이재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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