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상담소
▶▶ 독자 고민
책을 읽겠노라 마음먹고 책을 꺼냈지만, 몇 분도 안 되어 스마트폰을 집어듭니다. 예쁜 아기 릴스에서 직캠, 뮤지컬 장면, 쇼핑 추천까지 손가락은 멈출 틈이 없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공허하지만, 또 금세 똑같은 걸 반복합니다. 마치 누군가 짧고 자극적인 쾌락을 계속 주입하는 느낌이에요. 제가 디지털 중독자처럼 되어가는 건 아닐까요?
A : 쏟아지는 영상이 사고·감정 잠식… 사유할 수 있는 책을 읽으세요
▶▶ 솔루션
알고리즘이 정한 콘텐츠가 아니라, 내가 고른 이야기 한 줄이 내 하루의 중심이 되게 하십시오. 인간의 뇌는 ‘추구하는 회로(seeking system)’를 갖고 있습니다. 신경과학자 야크 판크세프는 이 회로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원하게 하고, 기대를 품고 쾌감을 통해 반복하게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이 회로가 지금 ‘기대→탐색→보상’이라는 순환을 통해 우리의 삶을 깊이 있게 만들어주는 대신, 지금은 단 몇 초 안에 보상을 줘서 회로를 끊임없이 돌아가게만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릴스를 넘기는 순간마다, 뇌는 ‘기대’라는 감정을 품고 ‘다음엔 더 재미있을 거야’라는 쾌락을 좇습니다. 이때 도파민은 폭포처럼 쏟아져서 만족감과 안심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이다 탄산처럼 자잘하게 터지고 금세 꺼져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멈추지 못합니다.
이 메커니즘은 마약이나 알코올의 중독과 매우 닮아있습니다. 다만 차이점은 그것이 스마트폰 속 릴스나 쇼트폼이란 이름으로, 중독이라는 자각조차 없이 우리 일상에 스며들었다는 점입니다. 현대의 쇼트폼 콘텐츠는 가히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알코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맥락 없는 파편들은 우리의 사고와 감정을 조금씩 잠식해갑니다.
문제는 탐색의 부재입니다. 이야기도, 시작도, 끝도 없는 파편들 속에서 우리는 사고의 구조를 잃어버립니다. 창조자의 자리에서 소비자의 자리로, 그리고 다시 ‘알고리즘이 제시한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로 추락하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것이 점점 우리의 정체성마저 소비해간다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회로는 회복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뇌는 본래 깊은 몰입과 탐색을 원하는 기제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스마트폰 대신 책을 꺼냈다는 사실, 그 안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싶어했다는 사실은, 추구 회로가 제자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신호입니다. 우리에겐 여전히 책장을 넘기고 사유하고 맥락을 되짚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바꿔야 하는 건 단 하나, ‘누가 나의 시간을 설계할 것인가’입니다. 쇼트폼 알고리즘이 정한 콘텐츠가 아니라, 내가 고른 이야기 한 줄이 내 하루의 중심이 되게 하십시오. ‘무엇을 볼까’가 아니라 ‘어떻게 볼까’를 먼저 선택하십시오. 짧은 영상 대신, 느리지만 당신을 변화시키는 문장을 고르십시오. 도파민은 즉각적일수록 금방 사라지지만, 사유는 천천히 스며들어 오래 남습니다.
권순재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정보이사·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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