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는 마음이 쳐들어오더라고. 딱 사그라들고 싶은, 그냥 딱 멈추고 싶은, 사라지고 싶은, 아무것도 아니고 싶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앉은자리에서 팍삭 자취를 감추고 싶은, 자유롭고 싶은, 자유, 맞아, 그쪽에 가깝더라고, 신기하더라

- 김선우, ‘우리 쑥 캐러 갈까?’ (시집 ‘축 생일’)

지난 금요일 오랜만에 여러 사람과 함께한 자리에서 하필 감기가 옮았나 보다. 모임이 파할 무렵 이마가 뜨끈한 것 같더니 귀갓길엔 으슬으슬 몸이 떨리기까지 하는 거였다. 얼른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푹 자야지. 요즘 너무 무리를 했어. 걸음이 빨라졌다.

이튿날 아침엔 나아진 듯했다. 찌뿌둥하지만, 열도 없고 기침도 없고 가벼운 몸살이었나 보다 싶었다. 아닌 게 아니라 너무 무리를 했지. 규모 큰 행사를 진행했고 학교 수업도 맡았다. 이번 계절엔 원고 청탁도 많았어. 투덜투덜 서점으로 출근하는 길 버스 안 볕 아래서 지독한 두통을 느꼈다. 범상치 않다, 싶더니 침을 삼킬 때마다 목구멍이 시큰해서 발길을 돌려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환절기엔 기관지염을 조심해야 한다고, 삼 일치 약 처방전을 받아 돌아 나오면서 나는 울고 싶었다. 아직 할 일이 많다. 써야 할 글도 잔뜩이다. 하필 이럴 때 병이 온단 말인가. 하소연을 담아 어머니에게 문자를 보낸 건 응석이었을 것이다. 아프면 누구나 아기가 되는 법이니까. 어머니로부터 답장이 왔다. 좀 쉬어라. 다 멈추고 다 잊고. 지금 그거 병이 아니라 신호다. 잠시 멈추라고. 그러니까 빨간불이다. 누가 그걸 모르나. 쉴 수 없으니 그렇지 입을 삐죽대며 횡단보도 앞에 서서 멈춰 서서, 내가 없어도 큰일 나지 않을 서점을 본다.

맡겨두고 이불 푹 뒤집어쓴 채 쿨쿨 자고 나면 싹 나을 것 같다. 이건 병도 아니고 신호도 아니고 마음이구나. 끙끙 앓는 마음이구나. 오늘은 조금 일찍 퇴근해야겠다. 오늘 다 못한 일은 내일이 해주겠지. 단단히 결심하는 거였다.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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