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철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

흔히 ‘붉은깃발법’으로 번역되는 적기조례(Red Flag Act)는 최초로 실용화된 자동차가 등장함에 따라 1865년 영국에서 제정된 법안이다. 자동차 운행을 위해 속도제한과 더불어 기수(旗手)가 붉은 깃발을 들고 55m 앞에서 달리면서 자동차를 선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 운송수단인 마차산업과의 마찰도 있었지만, 종종 발생하는 증기기관의 폭발 사고와 미비한 도로 그리고 신호체계 등의 문제로 인해 시민들이 느꼈던 안전 문제가 법 제정의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는 영국이 산업혁명의 문을 연 증기기관을 자동차에 적용해 최초의 상용 자동차를 개발했지만, 향후 자동차산업의 주도권을 다른 나라에 뺏기게 된 계기도 됐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지난달 26일 발생한 화재로 전자업무 시스템 647개가 동시에 중단되고 전자민원, 우체국 전자 서비스, 부동산 서비스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기능들이 마비됐다. 화재는 무정전 전원장치(UPS)에 사용된 리튬이온 배터리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우수한 에너지밀도 특성으로 인해 전기자동차(xEV), 에너지 저장 시스템과 같이 전기에너지를 사용하는 어플리케이션(앱)의 에너지저장장치(ESS)로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으나, 그만큼 안전성 우려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배터리는 높은 에너지를 집적해 사용하는 기기여서 에너지가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한꺼번에 방출되는 폭발 등의 위험성을 항상 안고 있다. 특히, 대규모 전력 저장용 ESS의 경우, 배터리 신뢰성이 매우 중요하다. 2017년부터 계속 발생한 ESS 화재 사고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안전성에 대해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국내 주요 배터리 제조사는 소재, 전극, 셀 그리고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등 모든 구성 요소에서 안전성 향상을 위한 기술을 개발해 오고 있다.

상용 리튬이온 배터리에 즉시 적용할 수 있는 기술로, 삼원계(NCM) 소재에 비해 에너지밀도는 낮지만 열적 안정성이 우수한 리튬인산철(LFP) 소재를 통해 열폭주 위험성을 낮추는 기술이 개발돼 적용되고 있다. 특정 온도에 근접하면 약품이 자동 분사돼 화재 초기 진압이 가능한 소화 기술, 열확산 방지를 위한 배터리 구조 설계 및 차단재 개발, 배터리 이상작동의 실시간 진단과 예측 알고리즘 기술 개발도 진행 중이다.

ESS 화재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배터리 시스템을 개발하는 연구도 한창이다. 화재 시 연료로 작용하는 유기 액체 전해질을 고체로 바꾼 전고체전지(ASSB)와 물을 전해질로 사용하는 수계 레독스흐름전지(RFB) 등은 화재 및 폭발의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배터리 시스템이다.

이러한 기술은 안전성 측면에서 충분한 검토가 이뤄진 후에야 비로소 제품으로 출시될 수 있다. 따라서 종래 기술의 개선과 함께 새로운 시스템 개발을 위한 혁신적인 기술 개발의 투 트랙 전략이 불가피하다. ESS 화재를 막는 길도 결국 기술 개발에 있다. 에너지 저장 기술은 국가 기반산업인 에너지 분야의 핵심 기술이다. 산학연에서 이뤄지는 장기간 연구개발에 예산 확대 등 국가 차원의 지원을 통해 160년 전 영국에서 자동차산업의 주도권을 잃었던 잘못을 21세기 한국이 답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희철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
정희철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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