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시명 막걸리학교 교장이 추천하는 ‘지역 술’
‘막걸리 학교’가 있다. 술맛이나 보며 흥청거리는 학교가 아니다. 막걸리에 대한 모든 지식과 함께 전문적인 술빚기를 가르친다. 2009년 개교 이래 막걸리 인문학(입문)강좌는 68기생을 교육 중이고, 중급과정은 41기, 상급은 25기생을 교육하고 있다. 소주 마스터 과정도 있고, 누룩 특강 등 전문 강좌도 있다. 양조장과 연계해 양조창업과 상품기획 제작 작업까지도 진행한다. 이 학교의 허시명 교장은 26년째 막걸리에 빠져 살고 있는 술 평론가다. 그에게 ‘차례상에 올리기 좋은 지역 막걸리를 골라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지역 기반의 정체성이 확고하되, 전국의 소비자를 상대로 온라인 판매를 하는 맛 좋은 막걸리를 꼽아보겠다’고 했다. 다음은 그가 골라낸 여덟 종류의 막걸리다.
① 오산 세마쌀로 빚은 장터 막걸리
오산양조가 자리 잡은 곳은 오산 오색시장 북쪽 끝이다. 양조장 앞 광장은 오산천변이 가까워 조선시대에는 장터의 중심이었다. 1919년에 만세운동도 펼쳐졌던 넓은 광장에서, 한가위를 앞둔 지난달 28일 ‘제1회 오산 세마쌀로 빚은 수제 전통주 품평회’가 개최됐다. 오산농협과 오산양조가 시장 활성화를 위해 마련한 행사였는데, 그 뜻이 보름달처럼 풍성하게 구현된 것이다.
오산양조장에서 빚는 막걸리는 오산막걸리 6도, 하얀까마귀 8도, 경기쌀막걸리 7.7도, 산수화 13도 네 종류다. 아스파탐 같은 인공감미료는 들어가지 않는다. 오산쌀 브랜드인 세마쌀을 사용하고, 그 쌀의 순수한 단맛을 전통 누룩으로 이끌어냈다. 네 가지 술은 알코올 도수가 각각 다르지만 맛의 결은 일관되게 이어진다.
오산막걸리 6도를 마시면, ‘밀키’한 단맛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퍼지고, 쌀과 밀에서 오는 곡물의 입자감이 씩씩하게 뒤따른다. 하얀까마귀 8도에서는 부드러운 질감에 이어, 칼칼하고 단단한 곡물 맛이 싸하게 입안을 감돈다. 균형감 있는 맛의 프리미엄급 산수화 13도는 선물용으로도 손색없이 구성됐다.
찾아가는 길 = 경기 오산시 시장길 63
오산오색시장 북쪽 끝 오산양조
햅쌀로 빚어 선물용으로도 좋아
남태령 넘어 삼남길의 과천도가
관악산 등산 마치고 동료와 한잔
성수동 지식산업센터 우리서막
분홍소금 넣어 향·감칠맛 증폭
논산 조선식 건축물엔 양촌양조
찹쌀로 빚어 단맛에 묵직한 질감
② 관악산 품은 담백한 막걸리
과천도가는 과천정부청사역 부근에서 별주막과 공유책방을 운영하며, 이를 바탕으로 시민 참여 방식으로 자금을 모아 탄생한 양조장이다. 과천에 양조장이 하나도 없는 것을 아쉬워한 서형원 대표의 발상에서 비롯됐다. 서 대표는 전통주 쇼핑몰 ‘술별닷컴’을 열어 다양한 술을 판매하고 있고, 최근에는 200여 종의 전통술을 맛볼 수 있는 별주막 판교점을 열어 한국 술의 토털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과천도가에서 만드는 막걸리는 관악산생막걸리 6도, 과천미주 9도, 경기백주 14도 세 종류다. 관악산생막걸리는 막걸리의 후덕한 면모를 1ℓ 용량으로 구현한 술이다. 관악산 등산을 마치고 산행 동료들과 두부 안주에 곁들여 마시기 좋은, 담백하고 은은한 쌀맛이 잘 살아 있다. 인공감미료를 넣지 않고 생쌀 발효로 곡물의 순수하고 소박한 맛을 추구한다. 과천미주 9도는 지게미 함량을 줄여 맑은 층의 비율을 높인 막걸리다. 지게미가 적어 알코올 9%임에도 부담스럽지 않고 청량하게 다가오며, 부드러운 단맛이 섬세하게 살아 막걸리의 품격을 높였다.
예전 양조장에서는 귀한 손님에게 원주(原酒·발효가 끝난 술을 거를 때 물을 섞지 않은 탁한 술)인 ‘전내기’를 한 잔씩 대접하는 관행이 있었다. 신선하고 농밀하여 누구나 반할 만한 맛이다. 다만 도수가 높아 함부로 내놓지 않았는데, 과천도가는 이를 상품화하여 애주가들을 위한 경기백주 14도를 선보이고 있다. 남태령 넘어 과천 가는 삼남길에 과천도가가 있으니 찾아갈 만하다.
찾아가는 길 = 경기 과천시 남태령옛길 65
③ 성수동 감각을 담은 도심 양조장
2024년 발간된 ‘서울의 술’ 단행본에 따르면 서울에는 한국 술 양조장이 59곳, 맥주 제조장이 18곳 있다. 2016년 소규모 주류 제도가 생겨나면서 서울 도심에 양조장이 늘어난 것이다. 이 양조장들은 1인 오너 셰프가 운영하는 음식점처럼 1인 대표 양조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 성수동에도 양조장들이 생겨났는데, 그중 하나인 우리서막은 서울 성수동 지식산업센터 1층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서막의 막걸리는 우리막걸리 9도, 우리막걸리 12도, 우리분홍소금 12도 등이 있다. 서슬기 대표는 막걸리의 텁텁한 입자감을 줄이고 부드러운 질감을 살리기 위해 고운 망으로 손수 걸렀다고 설명한다. 우리막걸리 12도는 와인과 견주어 맛볼 수 있도록 완전 발효시켜 탄산감 없이도 부드럽게 목넘김할 수 있게 했으며, 도수도 12도로 맞췄다. 우유처럼 부드러운 질감이 느껴지는데, 우리막걸리 9도는 청량하고 12도는 원주에 가까워 타격감이 있으며 묵직한 과실 향이 감돈다.
우리분홍소금 12도에는 술의 금기 소재로 여겨지는 소금을 넣었다. 소금이 알코올의 강도와 어우러지면서 향과 맛이 증폭되고, 감칠맛이 살아난다. 히말라야 분홍소금을 사용해 술빛도 은은한 분홍색을 띠며, 과실 향이 올라와 ‘딸기를 넣었냐’고 묻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무감미료 방식으로 발효 과정에 유산균을 넣어 산뜻한 산미를 강화한 것도 특징이다.
우리서막의 막걸리들은 700㎖ 용량의 유리병에 담긴 프리미엄 제품으로, 전용 도자기 잔이 포함된 선물 세트로도 구입할 수 있다.
찾아가는 길 = 서울 성동구 성수일로 111
④ 1931년 대들보가 지키는 양조장
양촌양조는 1931년에 상량한 대들보가 있는 조선식 건축물의 양조장이다. 발효실은 반쯤 지하에 자리해 온도 관리를 편하게 했고, 원료처리실은 지게를 기대고 쌀자루를 부려놓을 만한 허리 높이에서 시작된다. 현재 2층 원료처리실은 홍보 전시실로 활용되고 있다. 전통가옥과 양조장이 어우러진 멋진 건축 조합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양촌양조에서는 양촌생막걸리 6도, 양촌생동동주 9도, 우렁이쌀손막걸리 7.5도, 우렁이쌀손막걸리 드라이 7.5도를 빚고 있다. 양촌생막걸리 6도는 동네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대표 제품으로, 쌀과 밀가루가 혼합되어 텁텁한 질감과 구수한 감칠맛을 지녔다. 양촌생동동주 9도는 맑고 진한 원주로, ‘진땡이’ 술을 좋아하는 동네 술꾼들을 위해 출시한 제품이다. 우렁이쌀손막걸리 7.5도는 프리미엄 막걸리로 널리 알리고 판매하기 위해, 무농약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논산 쌀로 빚었다. 우렁이쌀손막걸리 드라이 7.5도는 감미료를 넣지 않고 찹쌀을 사용해 단맛과 묵직한 질감을 더했다. 양촌양조는 약주와 소주까지 빚으며, 동네 양조장이면서도 서울로 이사한 동네 사람들까지 챙기는 오래되고 따뜻한 양조장이다. 귀성길에 찾아가면, 고향의 추억이 더해질 것이다.
찾아가는 길 = 충남 논산시 양촌면 매죽헌로 1665번길 14-7
⑤ 고향길에서 만나는 세월의 맛
목도양조장은 1939년 지어진 목조 건물로 충북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동네 양조장이다. 고향 가는 길에 양조장에 들러 미닫이문을 젖히고 들어가, 술값 치르면서 양조장 내부를 둘러보고 “세월이 가도 변함없는 것이 있군!”이라고 느낄 만한 곳이다. 양조사는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양조장 집 아들이다.
목도양조장에서 만드는 술은 목도생막걸리 5도, 괴산백주 9도, 목도맑은술 14도, 약주 느티 15도다. 목도생막걸리는 원래 6.5도였으나 이번 가을에 5도로 순해졌다. 목도 양조사는 부드러운 맛과 유산균의 상쾌한 산미를 담고 싶어 도수를 낮췄다고 한다. 세상이 거칠어져도, 막걸리는 더 부드러워지고 있는 셈이다. 괴산백주 9도는 찹쌀과 멥쌀을 주재료로 사용한 술로, 도수가 높아진 만큼 묵직한 맛을 지니면서도 달지도 싱겁지도 않은 균형을 갖추고 있다. 목도맑은술 14도는 탁주 원주 그대로를 제품화한 술로, 양조장의 자부심이 담겨 있다. 명절을 앞두고 맑은 술 제주(祭酒)를 찾는다면, 찹쌀과 멥쌀로 빚은 목도맑은술이나 약주 느티 15도를 고르는 것도 좋다.
찾아가는 길 = 충북 괴산군 불정면 목도로2길 10
⑥ 한라봉 향기, 전국구 막걸리로
대한민국 막걸리 제조장 중 위생 관리가 가장 잘 되는 곳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다도참주가를 꼽겠다. 청결하게 양조장을 관리하고, 내벽을 스테인리스판으로 처리해 오염을 최소화한 점이 돋보인다. 다도참주가의 깔끔하고 산뜻하며 잡내 없는 막걸리 맛은 이 공간이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다.
다도참주가에서는 참주가 생막걸리 5.5도, 참주가 솔막걸리 5.5도, 라봉 5.5도, 딸기 막걸리 딸링 5.5도를 빚고 있다. 참주가 생막걸리 5.5도는 청량감 속에 묵직한 단맛이 감도는 술로, 전남 나주 인근 마트나 골프장에서 인기 있는 대표 막걸리다.
2023년에는 라봉 5.5도가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 막걸리 부문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양조장의 위상이 높아져 전국구로 자리매김했다. 라봉 5.5도는 쌀 대비 20%의 한라봉을 사용하는데, 나주 농가에서 재배한 한라봉을 쓴다. 여기에 유산균 발효가 더해져 새콤달콤한 맛과 향긋한 귤향이 강화됐다. 딸링 5.5도는 붉은 빛깔과 딸기 향이 술 속에 부드럽게 녹아 있다. 참주가 솔막걸리 5.5도에서는 솔향이 아침 호수 위의 물안개처럼 경계 없이 퍼져 나간다. 음식 솜씨 좋은 전라도, 그 안에서 깔끔한 막걸리 맛으로 빛나는 양조장이 바로 다도참주가다.
찾아가는 길 = 전남 나주시 다도면 신촌2길 9
괴산 등록문화유산 목도양조장
4대째 이어진 가업 ‘전통의 맛’
깔끔 + 산뜻한 나주 다도참주가
한라봉·유산균 발효 ‘새콤달콤’
청년들이 빚는 강릉 진정브루잉
중앙시장·KTX역에서도 판매
노자 철학 담은 상주 상선주조
술 마시면서 명상하는 ‘역발상’
⑦ 청년이 빚은 강릉의 새로운 술
진정브루잉은 청년 사진가 진과 디자이너 정이 뜻을 합해 강릉 쌀로 술을 빚는 양조장이다. 강릉 홍제동 길가에 있는 가게의 투명 유리창 안에는 시음장이 있고, 한쪽에는 온도 관리가 가능한 냉장 발효실을 들여 양조한다.
이곳에서는 동네길 이름을 담은 새냉이길막걸리 6도, 레몬 소르베 10.5도 탁주, 파랑 약주 13도를 만들고 있다. 새냉이길막걸리 6도는 2024년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 막걸리 부문 최우수상을 받아 강릉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수상 비법을 묻자, 낮은 도수임에도 발효와 숙성을 길게 하여 맛의 균형을 잘 잡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5주 정도 발효한 뒤 도수를 맞춰 다시 숙성시켜 막걸리 맛을 평화롭게 어우러지게 했다는 것이다.
맛을 보니 목넘김이 부드럽고, 밀누룩에서 올라오는 구수함과 감칠맛이 입안을 감돈다. 옅은 단맛과 상큼한 산미가 어우러진 무감미료 막걸리다. 탁주 레몬 소르베는 레몬 셔벗을 막걸리로 구현해 보고 싶어 만든 제품으로, 레몬의 상큼한 맛과 민트향, 그리고 찹쌀의 감칠맛이 잘 어우러진 프리미엄 막걸리다.
파랑 약주 13도는 녹파주 기법을 차용해 빚었다. 밑술을 범벅으로 하고, 발효와 숙성 기간을 길게 하여 술맛의 깊이를 도모했다. 현재 강릉 KTX역 편의점과 강릉중앙시장 보틀숍에서도 판매되고 있으니, 강릉을 여행하면서 술 속에서 진정한 강릉을 맛보기를 권한다.
찾아가는 길 = 강원 강릉시 새냉이길 23-2
⑧ 노자 철학을 담은 명상의 술
상선주조는 막걸리와 명상을 연결지었다. 양조장 이름도 노자 철학의 ‘상선약수(上善若水)’ 사상을 담았다. 술을 마시면서 명상을 한다는 것은 역발상이다. 흔히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술을 마시지만, 백경락 대표는 ‘나 자신과 소통하기 위한’ 막걸리를 만들었다. 브랜드에도 ‘이너피스(INNER PEACE)’, 곧 내면의 평화를 내걸었다. 막걸리는 750㎖ 유리병에 담겨 있어, 와인처럼 깊고 크고 묵직하다. 상표에는 화가의 그림을 담거나, 화가에게 요청해 대자연 속에서 요가하는 모습을 표현하기도 했다. 제품으로는 이너피스 캄 12도, 이너피스 플로우 12도, 이너피스 넥타 10도, 이너피스 모먼트 10도가 있다.
이너피스 시리즈는 유기농 농산물로 빚고, 인공감미료는 쓰지 않으며 허브로 향기를 더했다. 향에 있어 플로우 12도는 포도와 라벤더로, 캄 12도는 자초와 애플민트로 감쌌다. 술맛은 쌀에서 우러난 단맛이 둥글게 맺혀 있고, 도수 12도의 술은 묵직하고 단단하며 선명하다. 음미하고, 명상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듯이 새로운 맛을 탐색하는 재미 요소가 담겨 있다. 막걸리에 철학을 담기 시작한 양조장이 등장했으니, 2025년 가을에 바라본 막걸리의 하늘은 높고 푸르다.
찾아가는 길 = 경북 상주시 상서문로 46-1
■ 간편하게 온라인주문
한가위 절기에 맞는 술은 햅쌀술, 즉 신도주(新稻酒)다. 올해는 한가위가 10월에 들어 충분히 잘 여문 햅쌀로 술을 빚을 수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막걸리는 일주일 정도라도 달콤하고 두툼한 술이 완성되니까. 손톱만큼의 수고로 온라인 주문만 하면, 큰 부담 없이도 좋은 술 두어 병을 차례상에 올릴 수 있다.
허시명 막걸리학교 교장·주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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