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정치부 차장
1637년 1월 30일, 병자호란에 몰리다 못한 인조가 삼전도로 향했다. 자비 한 톨 없는 엄동설한이 한강 나루 흙바닥을 거칠게 얼렸다. 인조는 청 태종이 앉은 단상 밑으로 끌려나가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었다. 희대의 치욕을 후대의 많은 사람이 곱씹고 되물었다. 김상헌을 비롯한 주전파들의 주장처럼 결사 항전했어야 하나. 최명길의 요청대로 청과 화의를 맺은 것은 매국인가. 청의 요구대로 ‘황제’라고 불러줬다면 전쟁을 피할 수 있었을까. 인조 정권은 쇠락하는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끊어내지 못했고, 중원을 새롭게 장악한 청나라에 대해선 적의를 드러냈다. 17세기 급변하는 동북아 국제질서에 대한 끔찍한 오판이었다.
역사는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분명 반미도 친중도 아니라는데, 그 주위에선 미국에 대한 호전적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더민주혁신회의는 관세 협상 상대인 미국을 향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도 정도가 있다”고 했다. 이들은 “미국이 한국을 마치 자신들의 속국이라고 착각하는 듯하다”고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자초한 반미 여론에 슬슬 기름을 붓는 격이다.
여권의 이런 발언은 대통령실, 정부의 강경한 분위기와도 무관치 않다. 역대 정부에서 미국과의 경제·안보 협상 과정은 극비에 부쳐졌지만, 이 정부 들어 협상 난제들이 속속들이 공개되고 있다. 국내 여론을 협상에 활용하기 위한 것인지, 앞으로 협상 실패에 대비한 보험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여론이 나빠질수록 협상 테이블에 앉은 당국자들의 운신 폭은 좁아들 수밖에 없다.
미국에 강경하나 북한엔 온건한 전통 진보 진영 기조는 이재명 정부에서도 강고한 또아리를 틀고 있다. 이 대통령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했지만, 쥐 한 마리 잡지 못하는 고양이들이 이 정권의 여전한 주류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을 거론하며 “스몰딜이 성사됐더라면 핵 문제 전개 과정은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 ‘운전자’석에 앉아 있던 여권이 이제 와서 남 일처럼 할 말은 아니다. 국가정보원이 대북 라디오·TV 방송을 52년 만에 전면 중단하면서 생긴 실익도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명분을 중시한 조선 사회에서 청과의 화의를 주장했던 최명길은 끝내 용서받지 못했다. 반대로 청과 끝까지 맞선 김상헌은 충신의 상징으로 남았다. 그 후손에서 재상 13명과 수십 명의 판서와 참판을 배출하며 명문가의 호사를 누렸다.
예나 지금이나 명분과 원칙을 앞세우는 주전론은 인기를 얻지만, 강대국 눈치나 보며 실익을 얻어내자는 주화론은 설 자리가 좁다. 미국과의 협상이 암초를 만날 때마다 자주파는 고개를 들고 동맹파는 움츠러들 것이다.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에 서명하는 순간 밀려들 후폭풍도 온전히 동맹파의 몫이다.
이대로라면 ‘친미’ ‘역적’ 소리를 들어가며 실익을 챙기려는 참모는 단 한 명도 남지 않을 것이다. 외교 안보에서 최선의 실용은 충돌을 줄이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자주파·동맹파 갈등 속에서 무엇이 실용외교인지, 이 대통령이 답을 내놓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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