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섭 중앙대 명예교수·정치학

 

선출 권력 내세워 사법부 겁박

견제와 균형은 민주주의 토대

의석 활용한 독주 이미 일상화

 

재정 포퓰리즘 입법 위험수위

면책특권으로 갑질과 음모론

탄핵소추의 정치적 악용 심각

우리 정치는 오래도록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문제 삼아 왔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과도한 권한이 국정 독주를 낳고, 권력분립을 무력화시킨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의 정국을 보면 대통령 권한이 문제가 아니다. 절대다수 의석을 장악한 정당이 운영하는 국회가 입법권과 면책특권을 방패 삼아 행정부를 압박하고, 포퓰리즘 입법으로 국가 재정을 위협하는 ‘제왕적 국회’가 민주주의의 위협이 됐다.

최근 국회는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권력이라는 명분으로 사법권과 행정부의 권한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국회가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본래의 정신을 넘어 권력의 제왕화를 통해 자기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다. 독재시대 국회의원 발언과 신분을 보장하던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은 악용돼 국회의원의 무책임과 치외법권의 상징이 됐다.

국회가 보여온 여러 가지 사례는 ‘제왕적 국회’라는 비판을 뒷받침한다.

첫째, 다수당의 힘을 앞세운 입법 만능주의가 일상화했다. 방송통신위원회 폐지 법안, 검찰청과 정부 조직 개편법,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국회는 충분한 논의나 사회적 합의 없이 표결을 해 법안 처리를 반복했다. 개인과 기관을 대상으로 정치 보복이라고 의심되는 입법이 강행됐다. 노사관계에서 노조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입법을 밀어붙여 기업 활동을 저해할 가능성이 짙다. 대립되는 입장의 일방을 편드는 입법 행태는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며, 국정 운영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둘째, 재정 포퓰리즘 입법이 남발되고 있다. 무상 복지 확대나 각종 지원금 법안이 재원 대책 없이 통과되는 경우가 많다. 무상 급식·교통·의료 확대와 같은 무상 복지 법안이 충분한 재원 논의 없이 표(票)를 의식해 추진됐다. 청년 기본소득, 노인수당 확대 등 현금성 지원책도 장기적 일자리 창출이나 구조개혁 없이 끝났다. 농민수당과 지역화폐 지원은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제한적이고 재정 부담을 키웠다.

셋째,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정쟁의 장으로 변질시켰다. 몇몇 국회의원은 면책특권을 악용해 국정조사 자리에서 조사는커녕 근거 없는 음모론을 확산시켰다. 국정조사나 청문회에 출석한 증인들을 윽박지르고 모욕을 주는 행태를 공공연하게 자행한다. 인사청문회는 대상자의 정책 역량과 자질을 검증하는 자리인데도, 신상 털기식 질문과 정치적 공격이 난무한다. 정쟁만 가득한 대개의 청문회는 국회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국민의 불신을 키운다.

넷째, 탄핵소추권이 남용됐다. 탄핵은 중대한 법률 위반에 한정해 예외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지난 정권 때 당시 야당은 정치적 의도로 장관이나 총리급 인사 및 야당을 수사한 검사들을 잇달아 탄핵소추해 헌법적 권한을 정권 무력화 수단으로 전락시켰다. 행정부를 마비시켜 정치 불안정으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사태로 비화했다.

며칠 전 국회는, 당시 대통령 후보자에 대한 선거법 위반 판결과 관련, 대법원장에 대해서 대선 개입 의혹을 제기하고 국회 법제사법위 대법원장 청문회 표결을 강행 처리했다. 사법부 수장조차 정쟁 대상으로 삼아서 사법부를 장악하려는 의도를 내세우면 사법부 독립성과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근본부터 흔들릴 것이다.

대통령 권한 집중만이 민주주의의 위협이 아니다. 국회가 제왕으로 군림하면 국가 차원의 민주적 정치 운영은 또 다른 방식으로 힘들어진다. 절대다수 의석을 장악한 여당은 국회를 이용해 정치에 군림하려는 의도를 실행하지 않아야 한다. 절대다수 여당의 정치적 자제와 함께, 제왕적 국회를 국민의 국회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국회의 권한 남용을 제어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헌법상 특권을 폐지하거나 발동 요건을 엄격하게 하고, 국회 예산 운영의 투명성을 전면적으로 제고한다면 선거에서 국민이 국회의원을 직접 판단하고 평가해 심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다.

민주주의가 잘 작동되기 위해서는 국회가 홀로 강력해서는 안 된다. 우리 국회는 삼권분립의 헌법정신을 되새기면서 국민의 민주적 뜻에 귀를 잘 기울여야 한다.

김호섭 중앙대 명예교수·정치학
김호섭 중앙대 명예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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