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논란 끝에 백지화된 금융감독체계개편... ‘태산명동서일필’
조직 의견 수렴 미흡했다는 비판도
정부가 여당·대통령실과 논의를 통해 발표한 금융정책 기능의 재정경제부 이관 등을 핵심으로 한 ‘금융감독체계개편’을 백지화했다. 지난달 7일 발표된 이 개편안은 18일만인 25일 전격 철회됐다. 관치금융을 청산하고 금융기능 정상화를 통한 금융소비자 보호에 천착하기 위해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추진됐지만,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큰산이 울리고 흔들렸지만 나온 건 쥐 한 마리)에 불과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더 난감한 건 이번 개편 과정에서 개편 당사자인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내부의 목소리가 배제돼, 내부 직원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혔다는 점이다. 금융위·금감원 내부 직원들의 개편 반대는 예상보다 강력해, 신임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개편에 반대하는 내부 조직원들의 반발에 당혹했다는 전언이다. 내부에서는 “앞으로 이 위원장의 영이 서지 않을 수도 있다”며 “이번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이 위원장”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 )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이번 개편은 여당과 대통령실이 주도했으며, 전체 정부 조직 개편의 한 부분에 해당한다. 검찰청 폐지나, 기획재정부에서 예산기능의 분리 등 굵직하고 파장이 큰 변화가 있었다. 여기에 금융감독체계 개편도 함께 이뤄진 셈인데, 이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는 게 금융당국 내부 직원들의 공통된 불만이었다. 실제로 금감원 직원들은 장외에서 이같은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금감원 직원들은 지난달 24일 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와 금감원 공공기관 지정을 반대하며 국회 앞 도로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일부 직원들은 출근시간에 주요 은행 본점 앞 1인 시위에도 나서며 노골적으로 개편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금감원의 반발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 공무원들인 금융위 직원들의 윗선에 대한 불만과 저항은 그 어느때보다 노골적이고 심각한 수준이다. 금융위 직원들은 공무원 신분이기에 ‘반민반관’금감원 직원들과 달리 장외로 나서진 않았다. 그러나 과거엔 볼 수 없었던 행동으로 ‘윗선’의 나약함과 여당·대통령실의 일방적 개편 추진을 비난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이 위원장이 취임식이 열린 지난 달 15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는 금융위 소속 사무관들이 대부분 참석하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이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조직개편을 염두에 두고 “공직자로서 국가적 최종 결정에 따라야 하는 것도 책무이자 의무”라고 밝혔지만, 젊은 사무관들의 공감을 얻어내긴 어려웠다. 이어 지난달 17일에 국회에서 열린 경제분야 대정부질문 당시에도 사무관들의 저항은 이어졌다. 이재명 정부의 첫 국회 대정부질문이자 이 위원장이 국회에서 처음 답변하는 상황이었지만, 이날 정부 청사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무관은 아무도 없었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대체로 대정부질문이 있는 날에는 담당 사무관들이 답변 자료 등을 챙기기 위해 항상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오후 늦게까지 이어진 대정부질문을 지킨 사무관은 없었던 것이다. 이 역시 이 위원장에 대한 불만을 여과없이 드러낸 사무관들의 일종의 ‘시위’인 셈이다.
이같은 헤프닝을 두고 앞으로 이 위원장의 임기가 험난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직원들의 신임과 존경을 받아야 감독당국 수장으로서 업무 추진이 가능하지만, 시작부터 ‘영이 서지 않는’ 상황을 겪었기 때문이다. 조직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지적도 적지 않지만, 결국 이 위원장과 이재명 정부가 이같은 상황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조직원들 조차 설득하지 못한 이번 개편안을 두고 어떻게 시장이 이해하길 기대하냐는 것이다. 특히 금산분리 완화 현실화나 가상화폐 활성화 및 합리적 규제방안 마련 등 시장의 변화에 금융당국이 기민하게 대응해야 하는 사안들이 즐비한데 조직개편이란 탁상공론으로 인해 당국 수장만 타격을 입었다는 시각도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결국 없던 일이 됐지만, 이 위원장 개인으로선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됐다”며 “수장의 명령에 불복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된다면 시장에서도 당국의 감독이나 정책을 불신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정민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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