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로 ‘남북 기본협정 체결’을 명시한 가운데, 실제 추진된다면 동·서독이 과거 체결한 기본조약처럼 통일·민족성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좇은 ‘평화적 두 국가론’을 계속해서 띄우고 있는 상황이라 헌법적 가치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지난 8월 13일 ‘이재명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남북 기본협정 체결을 국정과제로 포함했다. 남북 기본협정의 롤 모델은 1972년 동독과 서독이 서로를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자고 맺은 기본조약이라고 한다.
남북 기본협정이 동·서독 기본조약을 따른다면, 남북의 서로 다른 국가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체결될 가능성이 있다. 동·서독 기본조약 전문은 “민족 문제를 포함한 근본적인 문제들에 관한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동독) 사이의 서로 다른 견해를 훼손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당시 동·서독의 상황은 남북과 유사했다. 동독은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우는 북한처럼 ‘2국가 2민족론’을 내세웠다. 체제 경쟁에서 수세에 몰리자 택한 불가피한 수였다. 반면 서독 정부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통일 지향성과 하나의 민족 원칙을 계속 고수했다. 어느 일방의 양보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 간 차이를 존중한다는 선에서 합의가 이뤄진 것.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달 25일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에 ‘남북 기본협정을 체결한다’는 내용이 들어간 것은 “두 국가성을 전제한 것”이라고 설명해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었다. 그는 “남북은 사실상의 두 국가, 이미 두 국가, 국제법적으로 두 국가”라며 “두 국가라는 것은 영구분단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실용적 관점이자 현실적 관점이고, 유연하게 관계를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제는 남북 기본협정 체결이 우리 현행 헌법을 위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단 점이다. 우리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한다.
송인호 한동대 법학부 교수(한동대 통일평화연구원장)는 지난 달 24일 ‘북한의 두 국가론과 남북기본협정 추진 방향’ 세미나에서 “두 국가를 인정하는 것은 ‘영구 분단론’과 맥락을 같이 하며, 탈북민 보호에 법리적 지장을 초래하고 급변사태 시 외국의 개입 여지를 높이는 등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중요한 헌법적 근거를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이끌 것”이라고 지적키도 했다. 송 교수는 “헌법적 관점 및 남북관계 악화 방지의 측면에서 북한의 국가성을 부인하는 남북한 특수관계론은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반면 김원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달 30일 펴낸 ‘남북관계 정상화와 평화공존의 지혜: 동서독 기본조약의 경우’ 보고서에서 “우리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통일에 대한 의지를 부정하고 훼손하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우리가 북한과의 평화공존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며 “공존을 위해 ‘합의 불가능하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합의’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권승현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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