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각사 무료급식소 외부 전경. 이수복 작가
원각사 무료급식소 외부 전경. 이수복 작가

■ 기자의 무료 급식 봉사 체험기

“명절도 공휴일도 운영

밥 먹기 전부터 200M 줄

손끝의 정성, 작은 기적

사람과 마음이 모이는 곳”

서울 종로3가 탑골공원 옆, 오래된 건물 사이로 자리 잡은 원각사 무료급식소가 있다. 1993년 봉사가 시작된 이래 30년 넘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문을 열었다. 노숙인과 홀로 사는 어르신, 생활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점심 한 끼를 내어온 곳이다. 원각사 무료급식소는 명절도 공휴일도 쉬지않고 운영된다. 배고픔엔 휴일이 없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주방에서는 밥 짓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좁은 복도에는 국과 반찬 냄새가 구수하게 퍼진다. 기자는 추석 연휴에 즈음해 이곳에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조리·배식 봉사를 직접 체험해 봤다.

매일 이어지는 나눔의 손길, 다양한 봉사단체 참여

‘불교와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봉사자들이 28일 짜장밥 조리를 위해 고구마 껍질을 벗기고 있다. 이수복 작가
‘불교와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봉사자들이 28일 짜장밥 조리를 위해 고구마 껍질을 벗기고 있다. 이수복 작가

원각사 무료급식소는 봉사활동에 관심 있는 여러 단체들이 번갈아가며 매일 식사를 준비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종교·문화·사회단체부터 일반 시민 모임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며, 각자의 방식과 정성으로 한 끼 한 끼를 마련한다. 이날은 ‘불교와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불여사)’이 배식과 조리에 나섰다.

평균적으로 하루 300명가량의 식사가 준비되며, 메뉴는 계절과 상황에 따라 매일 달라진다. 국과 밥, 반찬, 후식까지 세심하게 구성돼, 단순히 한 끼를 채우는 것을 넘어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봉사자들은 재료 손질부터 배식, 설거지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하며 손님들과 짧게나마 안부를 나누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원각사 무료급식소는 단순한 식사 제공을 넘어, 도시 속 따듯한 마음을 나누는 공간이 됐다.

짜장밥 300인분 준비…어르신들 먹기 좋게 감자와 고구마는 잘게

조언 문화일보 기자가 지난 28일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짜장밥을 만들기 위해 감자 껍질을 벗기고 있다. 이수복 작가
조언 문화일보 기자가 지난 28일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짜장밥을 만들기 위해 감자 껍질을 벗기고 있다. 이수복 작가

어르신들을 위한 짜장밥에는 건강을 고려해 다양한 채소가 들어간다. 양파, 감자, 고구마 등 재료 하나하나가 정성스럽게 준비됐다. 새벽 일찍부터 봉사자들은 감자와 고구마의 껍질을 하나하나 손수 벗겨야 비로소 짜장밥을 만들 수 있다. 하루 300인분을 준비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요리를 많이 해보지 않은 서툰 손길로 감자 껍질을 벗기고, 이어 고구마 껍질까지 정성껏 손질했다. 봉사자들은 작은 실수에도 서로 격려하며 웃음을 나눴다. 이렇게 손끝에서부터 정성이 담긴 재료들이 모여, 결국 따뜻하고 풍성한 한 끼가 완성된다.

짜장밥에 들어갈 고구마가 잘게 썰려 있다. 이수복 작가
짜장밥에 들어갈 고구마가 잘게 썰려 있다. 이수복 작가

비 오는 날도 이어지는 발길…200m 줄도 생겨

28일, 식사를 위해 원각사 무료급식소를 찾은 이들이 자기 순서를 표시하기 위해 박스를 깔아놓았다. 조언 기자
28일, 식사를 위해 원각사 무료급식소를 찾은 이들이 자기 순서를 표시하기 위해 박스를 깔아놓았다. 조언 기자

원각사 무료급식소를 찾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40대에서 90대까지 다양했지만 대부분 고령층이었다.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걸어온 사람도 있었지만, 지팡이에 의지하거나 휠체어를 타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어르신들도 많았다. 선글라스를 끼고 식사하러 온 사람, 한 손에는 짐을 들고 다른 손으로 우산을 받치며 버둥거리는 사람 등 각자 사연과 상황은 모두 달랐다.

비가 내리는 이날, 음식이 나오기 전인데도 아침 일찍부터 무료급식소 앞은 이미 북적였다. 사람들은 일찍 나와 박스를 급식소 앞에 깔고 자기 순서를 표시했다. 오전 10시쯤 되자 급식소 앞에는 200m가량 줄이 길게 늘어섰다. 기다리는 동안 일부는 잠시 쉬며 서로 안부를 묻거나 짧은 농담을 나누었다. 긴 기다림 속에 작은 다툼과 언쟁이 생기기도 했고, 피곤해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고단함이 묻어나오기도 했다.

식사하기 위해 줄이 길게 늘어선 가운데, 어르신들이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지난 28일 식사하고 있다. 이수복 작가
식사하기 위해 줄이 길게 늘어선 가운데, 어르신들이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지난 28일 식사하고 있다. 이수복 작가

집중과 속도…300명이 한 시간 걸려 식사

원각사 무료급식소 내부 모습. 이수복 작가
원각사 무료급식소 내부 모습. 이수복 작가

원각사 무료급식소를 찾은 이들의 식사시간은 평균 10분 남짓이다. 짜장밥이 담긴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으면, 미리 준비된 미역국이 자동으로 배식된다. 사람마다 먹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밥을 더 달라고 요청하는 이도 있고, 김치를 더 많이 달라는 사람도 있으며, 밥은 거의 먹지 않고 자장 소스만 즐기는 이들도 있다.

식사하는 동안 밥 먹는 이들끼리의 대화는 거의 없었다. 오로지 식사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숟가락이 바쁘게 오가고, 한 끼를 금세 비워낸 뒤에는 후식으로 준비된 백설기와 우유를 챙겨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이곳의 특징 중 하나는 회전율이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하루 300명의 손님이 몰려도 1시간이면 대부분 식사가 마무리된다. 빠른 속도 속에서도 질서는 유지되고, 봉사자들의 손길과 체계적인 배식 시스템 덕분에 혼잡함 없이 한 끼가 제공된다. 이곳을 찾은 이들은 짧은 시간 안에서 끼니를 해결할 뿐 아니라, 잠시나마 몸과 마음을 달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긴 추석 연휴, 잠시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

28일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봉사활동을 한 봉사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수복 작가
28일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봉사활동을 한 봉사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수복 작가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는 30년 넘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눔이 이어져 왔다. 짜장밥 한 끼, 국 한 그릇, 후식 한 조각에도 봉사자들의 정성과 마음이 담겨, 도움을 받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힘을 전한다. 작은 손길 하나가 모여 누군가의 하루를 견디게 하고, 희망을 느끼게 만드는 순간이 되고 있다.

조언 기자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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