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노벨문학상 1주년… 그 여운은 ‘현재진행형’
‘소년이 온다’ 배경 따라 걷는
광주 인문투어에 전국서 참가
창비·예스24 운영 독서모임도
수상 이후 서평·신규개설 급증
日출판사 6곳 합동 ‘한강 페어’
이달 日서 서점코너 기념 행사
광주 = 글·사진 신재우 기자
좋은 문학은 독자를 뒤흔든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독서를 멀리하던 이들을 서점으로 향하게 하고, 독서모임으로 이끌며, 문학의 현장으로 불러낸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한강 작가의 수상은 우리 출판계와 서점가를 들썩이게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1주년을 맞아 그 여운의 현장을 찾았다.
◇광주, ‘소년이 온다’를 통한 문학적 부활
“비가 올 것 같아.”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의 첫 문장처럼 잿빛 하늘이 드리운 지난 4일 오후의 광주. 광주 상무관 앞에는 각지에서 모인 13명의 참가자가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긴 추석 연휴의 두 번째 날, 고향이 아닌 책을 따라 광주를 찾은 이들이다. 이들은 ‘소년이 온다’의 배경지를 따라 걷는 인문투어 ‘소년의 길’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 평택, 부산 등 전국에서 모였다. 한강 작가의 수상 이후 마련된 투어는 여름 기간 재정비를 거쳐 지난 9월 재개돼 상무관, 옛 적십자병원, 전일빌딩245 등 소설의 무대가 된 장소를 1시간 30분 동안 직접 걸어볼 수 있다. 광주에서 매주 토요일 두 번에 걸쳐 진행하는 투어에는 적게는 10명, 많게는 정원인 20명에 가까운 참가자가 몰린다고 한다.
이처럼 한강 작가는 5·18 사적지에 ‘문학적 외피’를 덧입혔다. 5·18민주화운동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과 이념 논란을 뒤로하고 광주는 문학의 무대가 됐다. 문학평론가 김형중 조선대 교수는 “‘소년이 온다’가 출간된 이후에 사람들이 광주를 찾고 5·18 사적지에 관심을 보이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 이전까지 외지에서 광주를 찾으면 예쁜 카페나 먹을거리로 향하지 구 전남도청이라든지 5·18 기록관을 들르지는 않았다”며 “문학 작품을 통해 주목을 받기까지 광주에서 5·18과 관련된 학술 연구와 기록을 잘 유지해온 것이 큰 보탬이 되었지 않았나 싶다”고 설명했다.
그중에서도 옛 전남도청 건너편에 위치한 상무관이 갖는 의미가 크다. 소설 속 중학생 소년 동호가 시신을 수습하던 장소이자 소설의 주 무대인 이곳에서 투어 참가자들은 소설 속 문장을 낭독하고 작가의 집필 의도를 들을 수 있기도 하다. 부산에서 가족과 함께 투어에 참여한 김모(46) 씨는 “처음 소설을 읽을 때 마음이 아파 쉽게 읽어지지가 않았는데 직접 광주 시내를 돌아보니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소설이 갖는 의미를 돌아보고 아이들도 읽어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투어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연구를 위해 투어에 함께한 최모(39) 씨는 “소설, 역사, 장소가 서로 만나는 지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고 했다.
◇서울, 한강이 만든 새로운 독서 풍경
그리고 서울. 이곳은 다가올 모임 준비로 한창이다. 출판사 창비가 운영하는 온라인 독서모임 ‘클럽창비’는 오는 17일 노벨문학상 수상 1주년을 기념해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 교환독서 파티를 준비 중이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김민영 창비 마케팅팀 대리는 “지난 5월 ‘소년이 온다’ 온라인 교환독서모임을 진행해 본 적이 있다. 당시에 호응이 좋았고 오프라인 행사에 대한 의견이 많아서 수상 1주년을 맞아 독자들과 함께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교환독서’와 ‘독서모임’ 등 최근 등장한 독서문화가 한강 작가의 수상과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예스24의 독서 커뮤니티 ‘사락’은 노벨문학상 이후인 올해 1분기, 지난해 4분기보다 신규 모임 수가 2배 이상 늘었다. 유서영 예스24 커뮤니티팀장은 “수상 직후인 11월 한 달간 신설된 모임 약 100개 중 절반가량이 ‘한강 작품 읽기 모임’이었을뿐더러 수상 이후 한강 작가 저서를 서평으로 제출한 모임이 100여 개에 달할 정도로 독서모임 신규 개설과 활동에 즉각적인 영향을 줬다”며 “이에 힘입어 사락은 론칭 1년 만인 올해 하반기 누적 모임 수 2000개를 돌파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한국 넘어 일본까지-아시아 독자에게로 확장
일본 출판계에서는 이달 ‘한강 페어’를 준비 중이다. 한강 작가의 수상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 전역에도 의미가 깊다. 한국 최초이기도 하지만 아시아 여성으로서 첫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점에서도 상징적이다. 일본에서 한국문학을 소개하고 있는 쿠온출판사의 김승복 대표는 “최근 일본에서 한강 작품을 낸 출판사 6곳이 합동으로 전국 서점에 코너를 마련하고 ‘한강 페어’를 열려고 한다”고 했다. “한강 작가의 그림책과 동화까지 번역되며 일본에서도 ‘한강 월드’가 넓어지고 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사랑이란 무얼까?/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한강 작가는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 ‘빛과 실’에서 ‘금실’처럼 이어진 사랑을 말했다. 어린 시절 시작돼 그의 작품세계를 연결해온 금실. 이제 그 금실은 광주의 거리로, 서울의 독서모임으로, 일본의 서점으로 이어지고 있다. 팔딱팔딱 뛰면서, 독자들에게로.
신재우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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