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연대기
최경봉 지음│돌베개
한글날인 10월 9일은 한글이 창제된 날일까? 한글날에 맞춰 출간된 책 ‘한글 연대기’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한글의 창제 목적과 원리를 해설한 책 ‘훈민정음’이 완성된 음력 일자(1446년 9월 상순)를 양력으로 환산한 날이다. 과거 책 완성일을 한글 반포일로 오해해 이날을 한글날로 지정했지만, 1940년 책 실물이 발견된 뒤에는 두 시기가 다를 수 있음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이날을 한글날로 기념한다. 책에 따르면 “한글날을 기념해온 과정이 또 다른 역사가 됐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한글날 제정의 역사는 곧 한글을 우리 민족의 자부심이자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의미한다. ‘겨레의 문화 독립 선언이자, 문화 발달의 원동력’으로서 한글을 조명하려는 조선어연구회의 노력 등이 그것이다. 이를 포함해 ‘훈민에서 계몽으로, 계몽에서 민주로’ 역사를 이끌어간 한글의 연대기를 책에서 짚어보는 것은 우리 민족이 한글에 어떻게 의미를 부여해왔는지를 살펴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세종대왕이 1443년 한글을 창제했을 때만 해도, 이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백성들을 위한 ‘훈민(訓民)’의 글자였다. 세종은 “내가 만일 언문으로 ‘삼강행실도’를 번역해 민간에 반포하면 어리석은 남녀가 모두 쉽게 깨달아서 충신·효자·열녀가 반드시 무리로 나올 것이다”라고 하기도 했다. 상하 계층이 두루 쓸 수 있던 한글이 조선시대 체제 유지에 활용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후 한글은 삼강오륜으로 상징되는 중세적 질서를 해체하고, 근대화 시기 ‘계몽’을 추동하는 힘으로도 전환됐다. 1894년 고종이 “법률·칙령은 모두 국문을 기본으로 한다”는 칙령을 내린 뒤부터 한글 쓰기는 크게 늘어났다.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돼 우리 글자와 말이 설 자리가 사라지자, 조선인들은 한글을 상처 입은 민족적 자존심을 치유할 수 있는 존재, 민족 얼의 상징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한글 신문이 발행되고 어문규범이 확립돼갔다.
한글에 대한 믿음은 한글의 과학성을 기계화의 흐름 속에서 입증하려는 노력으로도 이어진다. 1914년 이원익의 한글 타자기에서부터 휴대전화 천지인 자판 개발 역사 등이 그 사례다. 민족적 자부심의 원천인 한글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과 학자들의 연구개발, 한류 문화의 확산이 맞물려 한글은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444쪽, 2만5000원.
인지현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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