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는 어떻게 진보하고 왜 퇴보하는가
파리드 자카리아 지음│김종수 옮김│부키
네덜란드·프랑스·산업혁명과
현대의 세계화·지정학 혁명 등
굵직한 사건 되짚어 의미 고찰
“성공한 혁명도 진영간 논리 충돌
반발·역풍 이겨내고 ‘정의’ 실현
美-中 패권경쟁·우크라 전쟁 등
불평등 완화하고 연대해야” 주장
‘혁명’이란 말은 대개 ‘앞으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프랑스 혁명·산업혁명 등의 역사적 사건들에서 각인되었고, 언제부턴가 정보·정체성 등 민감한 세상 변화에 ‘혁명’이라는 말을 붙이면서 강화된 이유도 크다. 혁명의 본래 의미를 다시 고찰하며, 오늘 우리 시대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논한 책이 출간됐다. 미국의 국제외교 전문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파리드 자카리아의 ‘역사는 어떻게 진보하고 왜 퇴보하는가’다. ‘혁명’은 “갑작스럽고 급진적이거나 완벽한 변화, 근본적 변화 또는 전복”이라는 진보적 의미와 함께 “질서와 안정성, 물체를 항상 원래 위치로 되돌리려는 일정한 패턴의 움직임”이라는 회귀적 뜻을 품은, 즉 “정반대의 두 가지 정의”를 담고 있는 단어다. 새삼 거론할 것도 없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면서 “언론의 자유, 의회의 절차, 국가기관의 독립성과 같은 규범과 관행을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한다. 우파만의 일도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우파와 좌파 포퓰리스트”들이 저마다의 논리로 혁명의 “정반대의 두 가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뛰고 있다.
저자는 흥미로운 구성을 선택했다. 책 전반부는 네덜란드 혁명, 영국 명예혁명, 프랑스 혁명, 산업혁명 등 20세기 이전의 ‘역사 속’ 혁명을 소환한다. 후반부에는 현대 세계를 좌우하는 세계화, 정보, 정체성, 지정학 혁명을 깊게 들여다본다. 이유가 있다. “자유와 존엄, 자율성”은 어떤 경우라도 퇴보시켜서는 안 되는 인류적 가치인데, 역사 속 혁명과 현대세계의 혁명 과정에서 모두 이를 무산시키려는 “역풍”이 존재했다는 점을 반면교사 삼기 위해서다. 특히 인공지능(AI)이 등장한, 그야말로 혁명의 시대를 넘어서기 위해서 과거와 최근의 혁명을 함께 고찰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 속 혁명 중 다소 생소한 네덜란드 혁명을 살펴보자. 농지가 거의 없는 지리적 특성상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미 16세기 초반부터 국민의 절반 이상이 “무역, 운송, 제조업”에 종사했다. 또한 바다의 범람을 극복하기 위한 국토 건설, 즉 “정교한 제방과 수문에서부터 풍차로 구동되는 양수기” 등 신기술이 발전했다. 네덜란드는 여기에 “금융혁신”을 덧입혔다. 1602년 소규모 회사를 합병해 설립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증권거래소로 발전했다. 1609년 설립된 암스테르담은행은 “통화를 교환하고, 예금을 하며, 신용(대출·보증 등)을 얻고, 한 계좌에서 다른 계좌로 돈을 이체해 채무를 정산”하는 등 오늘날의 은행과 다르지 않았다. 17세기 네덜란드가 세계 무역을 주도한 이유다. 저자는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일련의 일들을 일러 “최초의 자유주의 혁명”이라고 규정한다. “다양성, 평등성, 활기찬 에너지”가 넘쳤지만, 역풍도 많았다. “애국적 민족주의”를 내세운 귀족들과 종교적 보수주의가 네덜란드 공화국의 약진에 발목을 잡았다.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에도 반발과 역풍이 존재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대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혁명 중 가장 관심이 가는 대목은 역시 지정학적 혁명이다. 미국의 힘은 줄어들었고,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며 자국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 러시아는 소련 붕괴를 “금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1990년대 체첸을 비호했던 이유도 결국 “모국 러시아로 복귀”를 향한 야욕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도전이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몰락”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자유롭지도, 국제적이지도, 질서정연하지도” 않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진보에 대한 ‘역풍’일 수밖에 없다. 가히 혁명적 시대다. 과거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와 속도로 사람들은 그것을 예측하거나 대응하기 어렵다. 혁명과 역풍이 압축적으로 교차하는 시대를 횡단하는 해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개인이 느끼는 불안과 상실을 덜어줄 수 있도록 변화 속도를 조절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을 추진하며 지역 공동체를 강화함으로써 국민으로서의 동질감을 회복”하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론적이고 미시적인 대책이지만 그것만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혁명적 대안이라면, 역풍을 이겨내고 그것을 끝까지 견지할 수 있는 인류 모두의 투쟁과 연대만이 답이 될 것이다. 600쪽, 3만8000원.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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