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회의 뒤집어보는 상식
‘콜럼버스의 달걀’이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언뜻 불가능해 보이지만, 일단 방법이 제시되면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일을 비유할 때 쓰인다. ‘간단하지만 기발한 발상’ ‘발상의 전환’을 뜻한다. 흔히 알려진 이야기로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사진)의 일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대륙을 발견한 뒤 사람들의 의심과 비난에 직면한 그는 삶은 달걀을 탁자에 세워 보이며 “시도하면 쉬운 일”임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진실은 다르다. 실제로 콜럼버스가 달걀을 세웠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콜럼버스의 달걀’은 그의 창작도, 실제 행동도 아니었다. 이미 존재하던 우화적 이야기가 그의 이름에 덧씌워진 결과였다.
이 이야기가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565년. 이탈리아 작가 지롤라모 벤초니의 ‘신세계사’에서다. 흥미로운 점은 벤초니가 콜럼버스를 대체로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그의 업적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달걀 이야기를 에피소드로 끌어왔다는 사실이다. 이는 당시에도 이 일화가 사실이라기보다는 상징적 장치였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이와 유사한 전승은 이미 존재했다. 15세기 초, 이탈리아의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피렌체 대성당의 돔 설계를 발표했을 때의 일화가 그것이다. 1412년 그는 독창적인 설계도를 공개했지만, 경쟁자들은 실현 불가능하다며 비웃었다. 그러자 브루넬레스키는 달걀의 한쪽 끝을 깨서 세워 보이며 “해답을 알면 간단한 일”임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 일화의 진위는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훗날 ‘콜럼버스의 달걀’로 변형·와전된 것은 분명하다.
결국 콜럼버스의 업적은 당대의 영웅화 분위기 속에서 상징적 서사가 덧붙여졌다. 이후 ‘콜럼버스의 달걀’은 창의적 사고와 발상의 전환을 상징하는 비유로 굳어졌다. 즉, 이 표현은 원래 다른 맥락의 우화가 콜럼버스의 이름을 빌려 새롭게 포장된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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