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올해 노벨 생리학상을 수상한 사카구치 시몬(74) 오사카대 교수는 ‘학계의 이단아’로 불린 의과학자이다. 교토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면역학을 연구한 뒤 오사카대 면역학 프런티어 연구센터에 자리 잡았다. 그는 1995년 면역 체계 내에서 정상적인 자기 조직을 공격하지 않게 감시하는 ‘조절 T세포’ 존재와 이를 통해 면역 체계가 균형을 잡는 ‘면역관용(immune tolerance)’ 메커니즘에 대한 논문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이는 의학계 정설을 뒤엎는 비주류 학설이었으나 끈질긴 연구 끝에 노벨상 공동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들의 발견으로 류머티즘 관절염 등 자가면역질환 치료가 바뀌었고 암 치료와 장기이식 성공률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집념과 탐구의 아이콘’인 그는 수상 후 “암도 고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며 “관심 있는 일을 소중히 여기고 꾸준히 이어가면 언젠가 재미있고 뜻깊은 순간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젊은 연구자들에게 주는 이 격려가 한국에선 통하지 않는다. 마침 나온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까지 서울대 의사과학자 양성과정을 마친 48명 중 절반가량인 22명은 결국 연구소가 아니라 병원을 택했다. 연구직의 낮은 소득, 불안정한 전망, 척박한 연구 환경 등이 이유였다. 개원의 평균 연봉이 4억 원인 현실에서 관심 있는 일을 소중히 하라는 말만 할 수 없다.

오사카대 및 일본 국립대 연구원의 연봉도 그리 높지 않다. 박사 학위 신입 연구원의 초봉은 500만∼600만 엔 정도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장기적 지원금, 안정적 신분, 자유로운 연구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제공돼 경쟁력이 높다. 일본은 20세기 초부터 과학적 발전은 최소 수십 년에서 100년에 이르는 누적된 결과에서 나온다는 ‘100년 연구’ 철학으로 기초과학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문부과학성·일본학술진흥회 등은 연구자에게 10∼20년 이상 한 주제에 몰입해 중간에 실패해도 흔들리지 않는 환경을 제공한다. 정권에 따라 연구 주제가 휘청이는 우리와는 다르다.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 그래야 현대 의학과 바이오 혁신의 핵심 인재인 의과학자를 양성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느새 ‘연봉’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1순위가 된 어지러운 우리 현실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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