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국정감사는 국회가 행정부와 그 소속 공공기관의 업무를 감사해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지키기 위한 제도다. 국민의 세금을 쓰는 모든 사업이 국정감사의 대상이므로 중앙 및 지방의 모든 정부 부처와 그 소속 공공기관들은 물론, 각종 지원 사업을 수행한 민간기관도 포함된다.
올해 국정감사는 오는 13일(월요일)부터 국회의 소관 상임위원회별로 3주간 진행되는데, 소속 의원 수를 고려하면 하루에 2, 3개 기관 정도에 각 의원의 발언 횟수와 시간은 평균 2∼3회에 회당 5분 안팎이 고작이다. 결국,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란 말처럼 요란하게 떠들면서도 실제 성과는 거의 없는 제도적 한계가 있다.
절대적 시간 부족에 살펴볼 자료는 산더미다. 수많은 증인을 불러 놓고 단 한 번의 질문도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회가 증인으로 나오라는데 나가지 않으면 미운털이 박혀 기업 활동에 어려움이 많은 기업인은 더욱 기가 막힌다. 그러잖아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발 관세 폭등으로 하루를 3년같이 시간을 나눠 써도 생존이 쉽지 않은 때다. 국회가 증인으로 나오라니 정당한 이유 없이 나가지 않을 수도 없는데, 시간을 쪼개 나가도 질문조차 하지 않아 멀뚱히 뒷자리에 앉았다가 나와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 얼마나 기막힌 노릇인가.
이번 국감도 이런 무분별한 증인 채택이 난무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53명의 증인을 채택했다. 정 회장은 해고된 사내 하청사 노동자들이 자기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최종적으로 패하자 현대차 내부에서 집회를 이어오다 경비 인력과 충돌한 사건에 대한 증인으로 채택됐단다. 이 사건이, 가장 중요한 미국 시장에서 25% 관세를 두들겨 맞아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는 세계 3대 자동차 기업의 총수를 불러 물어야 할 일인가.
정무위원회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오는 28일 국감의 증인으로 채택했다. 그 이유는 계열사 부당 지원 실태를 점검하기 위해서란다. 하필 그날, 최 회장은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부속 회의로 열리는 APEC CEO(최고경영자) 서밋에서 의장을 맡기로 예정돼 있다. 기업 활동을 지원해도 시원찮을 판에 방해를 해도 유분수지 이럴 수가 있는가.
국정감사에 주요 기업인들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이유는 몇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언론과 국민의 관심을 높여 자신의 정치적 인지도를 높이려는 꼼수다. 둘째, 일단 증인 채택을 하면 총수의 망신을 우려한 기업들이 몰려와 증인에서 빼달라고 읍소하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운이 좋아 국감장에서 국민의 주목을 받으면, 재선의 가능성이 커진다. 그 어느 경우에도 대기업 총수를 부르는 것은 절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그래서 국회의원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익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이건 국정감사도 기업감사도 아니다. 국민을 위한 득은 거의 없고, 오직 의원들의 놀이터로 전락했다. 국회야말로 당장 개혁해야 할 대상이다. 국회의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 사법개혁을 말하기 전에 스스로 국회 개혁부터 나서라.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2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