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문화부 차장

이레간 이어진 추석 연휴가 끝났다. 놀거리, 볼거리를 찾는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기 위해 콘텐츠 시장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공들인 신작을 내놓고, 그럴듯하게 포장한 예고편으로 유혹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이번 명절의 최종 승자는 단연 ‘가왕’ 조용필이었다. 올해 75세가 된 조용필이 150분간 홀로 펼친 무대는 그의 건재함을 알리는 동시에 이 시대에 진정한 ‘어른’이 필요하다는 것을 웅변하는 기회가 됐다.

6일 방송된 KBS 2TV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조용필쇼)의 전국 시청률은 15.7%(닐슨코리아)였다. 추석 연휴 기간 편성된 모든 프로그램을 통틀어 최고 성적이다. 지역별 시청률을 살펴보면 광주가 20.6%로 가장 높았고, 부산(19.6%)이 그 뒤를 이었다. 그가 세대 통합과 더불어 지역 통합까지 이뤘다는 방증이다.

시청률을 시청자 수로 환산하면, 약 286만 명이 추석 당일인 6일 오후 7시 30분부터 10시까지 ‘조용필쇼’를 시청했다. 8일 방송된 재방송 시청률도 7.3%로 이 역시 이날 전 채널 통틀어 최고 였다. KBS가 내건 ‘수신료의 가치’가 오랜만에 확인된 셈이다.

하지만 이를 TV 자체의 영향력으로 보면 곤란하다. TV의 가치를 새삼 일깨우는 존재는 항상 스타였기 때문이다. 팬데믹 기간이던 지난 2020년 추석, 가수 나훈아가 15년 만에 TV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테스형’이라는 신곡을 공개한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의 전국 시청률은 29%였다. 이듬해 추석에는 심수봉이 ‘피어나라 대한민국 심수봉’(11.8%)으로 기운을 불어넣었고, 그해 연말에는 “팬데믹 시기를 견디는 우리 모두가 영웅”이라고 외친 ‘Were HERO 임영웅’(16.1%)이 대중을 TV 앞으로 모았다. 이후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2022년·12.7%), ‘진성빅쇼’(2024년·8.3%)에 이어 조용필이 배턴을 이어받았다.

그들이 남긴 메시지도 긴 여운을 남겼다. 팬데믹 시기, 나훈아는 “역사책에서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못 봤다. 바로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지켰다. 긍지를 가지셔도 된다”면서 “이왕 세월이 흐르는 거, 우리가 끌려가면 안 된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세상을 떠나기 불과 4개월 전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 무대에 섰던 고인은 “‘전국노래자랑’으로 쌓인 것도, 남은 것도 많다. 제가 했다기보다도 지은 신세가 이렇게나 많은데, 인사를 보내주셔서 더더욱 감격스럽다”며 “정상에 오른 분들은 열심히 정상을 지키시고, 실패를 했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위로했다.

그리고 조용필은 엔데믹 전환 후 대중과 만났다. 그의 나이를 고려해 스태프는 앉아서 노래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려 했다. 하지만 조용필은 “그러면 안 되는 거다. 어떻게 노래하는 사람이 무대에서 앉아서 할 수 있느냐”며 게스트 없이 150분간의 공연을 홀로 책임졌다는 후문이다. 아울러 조용필은 “한 곡 한 곡 들으시면서 가족들과 같이 노래하고 춤도 추면, 그게 제겐 감동이고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각자의 스마트폰에 몰두하며 파편화된 가족들에게 명절을 맞아 ‘어른’ 조용필이 넌지시 전하는 조언이었다.

안진용 문화부 차장
안진용 문화부 차장
안진용 기자
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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