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길어지며 절정 1~2주 지연
이상 고온 영향으로 올가을 단풍 절정은 늦게 찾아올 전망이다. 잎이 녹색을 벗고 붉게 물들려면 ‘추위’와 ‘시간’이 필요한데, 더위가 길어지면서 단풍의 색이 들기까지 시간이 늦어진 탓이다.
9일 기상청에 따르면, 강원 설악산(10월 2일)과 오대산(7일)에 단풍이 시작됐다. 기상청은 산의 20%가 물들었을 때를 ‘단풍 시작’으로 본다. 설악산의 평년(1991~2020년·30년 평균) 단풍 시작은 9월 28일로 올해는 이보다 4일 늦은 것이다. 한국의 단풍은 설악산에서 시작해 점차 전선이 남하한다.
단풍 시작이 늦은 만큼 절정(산의 80%가 단풍·기상청 기준)도 지연될 전망이다. 보통 단풍 시작부터 절정까지는 3~4주 정도 시간이 걸린다. 이에 10월 말쯤 설악산 단풍이 가장 아름다울 것으로 예상된다.
설악산 단풍의 절정 시기는 평년 대비 2주가량 늦어지고 있다. 설악산의 평년 단풍 절정은 10월 17일이다. 과거엔 추석 연휴를 보내고 10월 한 달가량 단풍놀이를 해왔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나라가 9월에 가을 문턱을 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9월이 여름으로 바뀌며 단풍도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단풍이 물들려면 선선해져야 한다. 단풍은 잎이 광합성 활동을 포기하면서 시작된다. 가을은 일조량이 줄고, 공기가 건조해지며, 기온도 낮아진다. 이때부터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안토시아닌’이란 물질을 생성하고 잎이 붉은 색깔을 띠게 된다. 이런 활동은 특히 일 최저기온이 5도 이하로 떨어지면서 활발해진다.
그러나 더위가 길어지며 단풍나무가 광합성을 그만두는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 올 9월 전국 평균 기온은 역대 둘째로 높은 23도로 평년보다 2.5도 높았고, 여름인 지난 6월(22.9도)보다도 더웠다. 올해 기상학적 여름(일평균 기온이 20도 이상 올라간 후 다시 떨어지지 않은 첫날부터 마지막 날)은 지난 6월 3일(20.1도)부터 지난달 29일(20도)까지였다. 사실상 가을이 10월에 시작되면서 단풍 시기도 늦어진 셈이다.
이같은 현상은 동아시아 일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대만 난터우에 있는 아오완다 국립산림유락구에선 이상 고온 현상으로 가을에 단풍이 거의 들지 않다가, 12월 말 북쪽에서 찬 바람이 내려오고 나서야 산림 50%가 붉게 물들었다. 겨울에 단풍을 볼 수 있었던 셈이다. 일본 나가노와 삿포로에서도 작년 가을 첫 단풍이 평년보다 11일 늦게 시작됐다.
‘지각 단풍’은 색깔도 선명하지 않다. 그늘, 일조량, 고도 등에 따라 같은 산이라도 단풍이 물드는 조건이 다양하기에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촉박할수록 붉게 물들지 못한 녹색 잎이 많아진다. 이렇게 붉은빛과 녹색이 섞여 있다가 11월 중순쯤 북쪽에서 겨울바람이 내려오면 한꺼번에 낙엽이 돼 떨어진다.
일본에선 여름이 길어진 탓에 잎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단풍의 선명도와 밝기가 떨어졌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겨울이 짧아지며 이른 봄부터 잎이 올라오고, 긴 여름을 지나 너무 오래 살다 보니 가을로 갈수록 생리 활력이 떨어지고, 안토시아닌 생성 능력이 저하돼 붉은빛을 제대로 못 낸다는 것이다.
올해 단풍의 절정은 대부분 지역에서 10월 말~11월 초일 것으로 예상된다. 산림청은 최근 발표한 ‘단풍 절정 예측 지도’에서 강원 설악산은 10월 25일, 경기 국립수목원(포천)·수리산은 각각 10월 29일·31일, 충청권 속리산·가야산은 10월 27일·31일로 예상했다. 남부 지방 팔공산(11월 2일)·내장산(11월 6일)과 제주 한라산(11월 4일) 등은 11월이 돼야 절정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산림청은 산 전체의 50%가 단풍으로 물들었을 때를 절정으로 삼기에 발표 시기부터 보름 정도가 단풍 구경을 하기 좋은 기간이다.
박준우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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