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성혜령 - 도파민 중독
완전한 휴식
직장 동료들이 여름 휴가 계획을 물을 때마다 영인은 방콕에 간다고 답했다.
“한여름에 태국을 간다고요?”
누군가 반문하면 영인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방에 콕 박혀 있을 거라고, 이제 아무도 웃지 않는 농담을 태연하게 뱉었다. 아, 호캉스 가시는구나. 영인의 말을 곧이듣는 사람은 없었다. 영인도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태국의 호텔방과 영인의 작은 자취방 사이에는 바다보다 큰 간극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휴가 내내 작지만 안락한 방에서 익명의 친구들과 함께 달릴 ‘가장 악랄한 범죄자 시리즈’ 새 시즌이 나왔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해외로 여행 갈 돈도, 함께 갈 친구도 없는 자신의 처지쯤 아무리 비참해 봤자, 이 범죄 시리즈의 피해자들보다는 덜 비참할 테니까.
범죄 다큐멘터리는 영인의 유일한 취미, 아니 그 이상이었다. 지난 십 년간 영인은 무려 여섯 번의 퇴사를 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권고사직을 당한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 자의로 그만두겠다고 했다. 하지만 영인은 단 한 번도 ‘자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자기한테 의지가 있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동료에게 밉보여 괴롭힘을 당하거나, 연봉은 동결이면서 책임과 업무만 늘어난다거나…. 영인은 자기가 서 있는 땅만 끝없는 늪지인 것 같았다. 영인처럼 몇 번 이직을 거듭하던 이전 직장 동료들도 결국은 안정적인 기업에 들어가 승진을 하고 관리자 직급이 되어가는데 영인은 필사적으로 다리를 움직여도 남들처럼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겨우 제자리걸음, 아니 오히려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아침에 몸을 일으켜 회사에 가고, 다시 집으로 오기까지 모든 순간이 버거웠다. 영인은 자기가 조용히 죽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진짜’ 죽음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출퇴근 길에 보기 시작한 사이비 종교 다큐멘터리가 시작이었다. 회사 사람들이 점심시간에 모두 그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종교가 참 무섭다, 어떻게 그렇게 더러운 짓을 조직적으로 하냐, 우리 주변에도 있을지도 모른다, 이해가 안 된다…. 영인은 가벼운 마음으로 한 편 틀었다가 밤을 거의 새워 시리즈를 다 보고 회사에 벌게진 눈으로 출근했다. 잠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평소보다 덜 피곤했다. 그날 온종일 영인은 이상한 분노와 흥분이 자기 몸을 돌아다니고 있음을 분명히 느꼈다.
사이비 시리즈를 완주한 영인의 홈 화면에는 범죄 다큐멘터리가 올라왔고 영인은 거의 모든 범죄 다큐멘터리와 실화 기반 영화를 밥 먹듯이 보기 시작했다. 그 영상들은 영인의 에너지가 된다는 점에서 정말 ‘밥’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에 어찌나 몰입했는지 영인은 잔인한 묘사가 나오지 않아도 생생하게 범죄 순간을 상상했고, 느꼈고, 고통을 겪었다. 그 가상의 고통 속에서만 영인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화면 속 비극에 비하면 영인이 현실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불편함들-자취방의 하수구 냄새, 온갖 벌레들, 옆집 여자가 남자친구를 부를 때마다 나는 소음, 옆집 여자가 툭하면 잘못 배달시키는 택배, 자신을 은근히 무시하는 회사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휴가를 앞두고 영인은 월동 준비를 하는 곰처럼 부지런히 집에 먹을 것을 사다 날랐다. 생수, 라면, 바삭하고 짭조름한 과자들, 냉동 만두, 냉동 피자, 맥주가 냉장고와 찬장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휴가 첫날, 거의 정오까지 늦잠을 자고 일어난 영인은 암막 커튼을 친 어두운 방 안에서 식탁 겸 책상인 앉은뱅이 탁상에 노트북을 두고 과자 한 봉지와 맥주 캔을 나란히 놓은 뒤 경건하기까지 한 마음으로 ‘가장 악랄한 범죄자’의 새 시즌 1화를 틀었다. 이 시리즈는 글로벌 플랫폼에서 자체 제작한 시리즈로 전 세계에서 발생한 강력 범죄를 취재하고, 수익의 일부는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을 피해자 유가족들에게 기부한다고 유명해진 콘텐츠였다. 새 시즌의 첫 에피소드는 스웨덴에서 시작했다. 타이틀은 ‘평화로운 마을의 친절한 이웃’.
오프닝을 건너뛰자 까만 화면이 점차 밝아지며 곧 하얀 눈이 가득 내리는 전형적인 북유럽의 침엽수림이 펼쳐졌다. 그리고 ‘재현’임을 알리는 작은 경고문이 화면 위에 나타났다 사라지고 카메라는 워커를 신은 발이 눈밭에 푹 빠졌다 곧 탁 차오르며 힘차게 걸어나가는 장면을 클로즈업했다. 워커를 신은 남자는 어깨에 커다란 자루를 짊어지고 있었다. 자루 아래로 붉은 피가 한 방울씩 떨어져 내렸다. 영인은 자신의 피가 빠르게 발끝으로 쏠리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반응하고 있었다.
―대낮에 시체를 저렇게 옮긴다고? 북유럽은 보법이 다르네.
―아, 그거 지금 보시는? 이번 시즌 미쳤음요.
영인은 혼자 달리는 글에 달린, 눈에 익은 닉네임에 곧장 반응했다. 영인이 댓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사이 남자는 자루를 어깨에 멘 채 태연하게 마을로 향했다. 마당의 눈을 치우던 몇몇 이웃들과 그는 눈을 마주치고 인사도 나눴다. 그리고 곧 당시 실제 이웃이었던 한 백발노인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를 착한 사마리아인이라고 불렀어요….”
그때였다. 마치 그 말에 무슨 헛소리냐고 반박이라도 하듯, 옆집에서 벽을 쿵쿵 치는 소리가 느닷없이 날아들었다.
아, 또. 영인은 이마를 구기며 바로 노트북 스피커의 볼륨을 높였다. 남자친구가 왔나 보네. 영인은 맥주를 들이켰다. 옆집 여자는 막상 마주치면 먼저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었지만 벽을 통해 들리는 여자의 삶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남자친구가 오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요란하게 관계를 맺었고 택배는 툭하면 영인의 집 앞으로 배달시켰다. 처음 몇 번은 선선히 옆집 문 앞에 다시 갖다 놓았는데 그런 일이 너무 자주 반복되었다. 익명 커뮤니티에 옆집 여자가 자꾸 택배를 잘못 배달시킨다고 쓰니, 일부러 그런 거라는 답글이 많이 달렸다. 자기 집의 주소를 노출하기 싫어서 옆집이나 윗집 주소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고.
이어폰을 착용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전에 외이도염을 앓은 적이 있어서 내키지 않았다. 진작 스피커를 샀어야 했는데. 다른 이웃에 피해를 줄까 봐 망설였던 자신이 한심했다. 아예 우퍼가 달린 스피커를 사서 벽 앞에 두고 소음이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직접 겪게 해줄걸. 벽 너머의 소리는 평소보다 꽤 오래 지속되다가 끝내 잠잠해졌다. 어느새 화면에서는 드디어 ‘친절한 이웃’이 어린 아이들에게 숲 속에서 분홍색의 나비를 봤다고, 황금처럼 빛나는 버섯을 봤다고 몰래 속삭이고 있었다. 영인이 핸드폰에 빠르게 ‘안돼, 얘들아, 가면…”까지 적고 있을 때 이번에는 초인종이 울렸다.
영인은 신경질적으로 스페이스바를 쳐서 화면을 정지시키고 인터폰 화면을 확인했다. 배달기사가 봉지를 문 앞에 두고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배달을 시킨 적이 없는데 싶었다가 아, 옆집 여자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 하다 배달까지 내 집 앞으로 시키다니. 옆집 여자 때문에 영상을 중지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는 사실이 짜증스러웠다. 영인은 다시 노트북 앞으로 돌아와 맥주를 마저 마시며 다섯 편을 연달아 보았다. 그 사이 암막 커튼 너머로 여름의 긴 해가 가라앉았다. 맥주 세 캔과 과자 두 봉지를 먹은 영인도 다시 허기를 느꼈다. 집 앞 단골 쌀국수집에 다녀오려고 문을 열었는데 옆집에서 나오던 남자와 마주쳤다. 남자는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양손에 쥐고 있었다. 영인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남자는 빠르게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갔다. 남자의 발소리가 오래된 빌라를 부술 듯 울렸다. 어, 그런데. 봉투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던 것 같은데. 아니, 물이 아니라 피같이 찐득한 게. 영인은 복도를 유심히 봤지만, 물론 아무런 흔적도 없이 깨끗했다.
쌀국수를 먹고 돌아온 영인은 아직까지도 문 앞에 그대로 놓인 배달 봉지를 발견했다. 안에는 비닐로 여러 겹 포장되어 있어 뭔지도 모를 음식이 조용히 식어가고, 어쩌면 벌써 쉬고 있을지도 몰랐다. 영인은 봉지를 들고 옆집을 한번 바라본 뒤, 결국 가져다주기로 했다. 봉지에 붙은 긴 영수증이 바스락거리며 흔들렸다, 그 영수증에는, 배달 기사도, 영인도 보지 못한 요청 사항 하나가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배달 요청 사항: 초인종 없이 문 앞에 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고 좀.
“도파민 뿜는 콘텐츠 삶을 견뎌내기 위해 중독처럼 몰입해”
■ 작가의 말
요즘은 ‘도파민’이 주식이 된 것만 같다. 식사는 걸러도 쏟아지는 콘텐츠는 참을 수가 없다. 성혜령 작가의 ‘완전한 휴식’ 속 영인도 그런 도파민 중독자 중 하나다. 해외여행이나 끼니는 제쳐 두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찾아 헤맨다. 성 작가는 “도파민 중독도 일종의 사이클인 것 같다. 그 주기가 짧고 현실을 무시할 정도로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현실에서 여유가 생기면 도파민을 주는 것들을 찾아다니면서 살게 된다”고 전했다.
성 작가 또한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는 콘텐츠에 푹 빠진 경험이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삶을 견디기 위해 콘텐츠가 필요하다”며 “나도 아이돌 덕질부터 소설,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콘텐츠에 몰입했다”고 했다.
현실에서의 여유로 시작된 중독은 현실 속 큰일들을 ‘사소한 불편함’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 끝엔 이웃 주민의 죽음이라는 비극이 놓인다. 성 작가는 극적인 이야기를 구상한 이유에 대해 “짧은 이야기일수록 반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서사를 쌓아갈 시간이 충분치 않으니 짧은 시간 동안 강렬한 인상을 남기려면 이 방법이 효과적일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결국 이 또한 도파민이다.
2021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성 작가는 소설집 ‘버섯 농장’ ‘산으로 가는 이야기’ 등을 출간했다. 2023·2025년 젊은작가상, 2024년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신재우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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