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주철환의 음악동네
내게 조용필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다. 그래도 누가 물어보면 조용필과 친한 사이라고 자랑한다. 그 시절 방송사에 다녔다고 조용필과 다 친한 건 아니다. PD와 가수가 친하다는 기준을 나는 이렇게 세웠다. 일(촬영) 때문이 아닌데도 그가 사는 집에 두 번 이상 가본(놀러 간) 사람. 설마 가깝지 않은 사람을 집에까지 부르겠는가. ‘이 마음은 사랑일까 미련일까 착각일까’(조용필 4집 ‘자존심’) 질문자는 호기심을 놓지 않는다. “평소 연락은 하세요?” 취조하듯 물으신다면 그냥 ‘자존심’ 노래 1절로 갈음하겠다. ‘말을 할까 돌아서 보면 당신은 저만큼 있고’
조용필은 말보다 노래를 많이 한 사람이다. 동고동락 밴드 위대한 탄생의 리더(기타리스트 최희선)도 증언했다. “노래하거나 연습하거나” 그 말이 그 말이다. ‘추억 속의 재회’(조용필 12집)를 시연해본다. “형은 왜 TV 안 하세요” 쉼 없이 창작하고 공연도 하면서 정작 TV엔 안 나오겠다니 PD는 아깝고 아쉬웠다. 공교롭게도 내가 왕성하게 일할 그 시기부터 그는 TV를 멀리했다. “그러다가 잊히면 어쩌려고” 형은 대답 대신 기타를 어루만진다. 말 같지 않은 말을 던진 걸 나도 직감한다. TV에 안 나올 뿐 라디오에선 여전히 ‘아는 형님’의 노래가 전국을 뒤덮던 시기다. 수없는 ‘조용필’들이 노래방에서 그의 노래를 밤마다 불러댔으니 오죽하랴.
“네가 조용필이라도 돼?” 이 질문은 시대에 따라, 가수에 따라 어감을 확장하는 문항이다. 네가 그렇게 노래를 잘해? 네가 지금 방송 출연 여부를 고민한다는 게 말이 돼? 추석 당일(10월 6일) 방송된 특집 콘서트(KBS2)에는 자의 반(?) 타의 반 후배 가수 여럿이 화면에 호출당했다. 그들은 제2의 조용필을 꿈꾸는 걸까. 아니다. 내가 짐작하기에 그들은 즐기면서 다짐하는 거다. 가창의 기술이 아니라 가왕의 태도를 배우는 거다. 무대 위의 세세한 움직임을 획득하는 게 아니라 인생의 시간표를 무엇으로 꾸준히 채우느냐를 터득하는 거다. 어느덧 조용필의 이름표는 이정표가 되었다.
이번 방송 출연 결심을 나는 작심과 선심으로 분해한다. 공연 참관은 기껏해야(?) 수만 명이지만 공연 시청은 수백만 명이다. 사실 예전 방송 출연을 설득한 명분도 그것이었다. 나는 세종대왕의 월인천강지곡까지 들먹였다. 하늘에 달(月)은 하나지만 천 개의 강(江)에 비쳐 어둠을 밝힐 수 있다. TV는 당신의 노래가 천만 명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안 먹혔다. 지금은 안다. 모든 게 다 때가 있는 모양이다.
작심한 공연이니만큼 부제를 정하는 데도 제작진과 조용필은 숙고했을 거다. 결국 찾아낸 게 ‘미지의 세계’(7집) 첫 구절이다. ‘이 순간을 영원히’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비법이 있을까. 혹시 죽어버리면 되지 않을까. 명백한 오답이다.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방법은 죽는 게 아니라 사는 거다. 단, 찰나의 순간에도 진심과 열심을 담아야 한다. 윤동주의 서시에 나오는 ‘죽는 날까지’는 ‘사는 날까지’와 완벽한 동의어다. 치열하게 사는 자에게 순간은 곧 영원이다.
조용필은 최초 최고 최다 기록 보유자다. 그러나 그를 빛나게 하는 건 그런 단어들이 아니다. 그는 음악인으로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최후의 1인이 됐다. 그는 노래하다 죽는 게 꿈이라 자백한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그의 공연은 부흥회가 됐다. 무대의 열정은 객석의 열광으로 이어진다. 그 시절 단발머리 소녀들은 여기저기서 ‘오빠 사랑해’를 외친다. 평소 그의 집에 두 번(2집) 간 걸 가지고 평생 20집을 품은 팬들을 당할 순 없다. ‘그 소녀 데려간 세월이 미워라’(조용필 1집 ‘단발머리’) 눈을 뜨면 소녀가 안 보여도 귀를 열면 소녀들이 달려온다. 그렇구나. 소녀를 데려간 건 세월이지만 소녀를 데려온 건 음악이구나.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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