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산업화 상징 공간 첫 개방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국내 최대 규모’ 다원예술전
한원석 작가, 폐지관·AR로 산업과 인간의 관계 탐구
부산=이승륜 기자
부산 산업화의 상징이자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던 동일고무벨트 동래공장이 80년 만에 시민에게 처음 개방된다. 동일고무벨트 창립 8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설치미술전이 한 달간 이곳에서 펼쳐진다.
DRB동일은 이달 17일부터 다음 달 16일까지 부산 동래구 충렬대로238번가길 13의 동일고무벨트 동래공장에서 한원석 작가의 개인전 ‘지각의 경계: 검은 구멍 속 사유’를 개최한다고 13일 밝혔다. 관람 시간은 낮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관람료는 무료다.
전시가 열리는 동래공장은 1945년 설립된 동일고무벨트의 출발지로, 광복 이후 한국 산업의 토대를 다진 현장이다. 회사는 6·25전쟁과 산업화의 격동기를 거치며 국내 최초로 고무벨트를 국산화해 산업 발전을 이끌었다. 1980년 금사동으로 신공장을 옮기면서 가동이 중단됐으나, 건물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산업화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창립 80주년을 맞아 공장이 시민에게 처음 공개되는 역사적인 계기가 된다.
한원석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111개의 폐지관(廢紙管)을 활용한 대형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각 지관은 울림통으로 작용해 산업화 시대의 숨결과 소리를 표현하며, 관람객이 일정 거리 안으로 들어서야 소리가 들리도록 설계됐다. 인간과 산업의 관계를 체험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또 증강현실(AR) 기술을 접목해 바닥에 실제 검은 구멍이 열리는 듯한 몰입형 경험을 제공,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시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부산 출신인 한 작가는 산업 잔해와 폐기물을 예술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다. 2008년 부산비엔날레에서 폐스피커 3,650개로 만든 ‘형연(泂然)’을 선보였으며, 이 작품은 최근 APEC 문화산업고위급대화 환영만찬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작품으로 소개됐다. 그는 “검은 구멍은 자기 고백이자 제안이다. 이 공간의 울림 속에서 당신의 결핍이 나의 결핍과 마주하기를 바란다”며 “그 공명이 우리 모두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울림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산업의 흔적이 예술을 통해 새 생명력을 얻는 문화재생 프로젝트로서 의미가 깊다. 산업공간이 시민의 문화공간으로 거듭나는 이 시도는 부산의 문화생태계를 확장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며, 인천아트쇼 예술감독 김최은영이 기획을 맡았다. 사운드 아티스트 유영은과 퍼포먼스 아티스트 이예찬·김관지·표혜인이 참여해 소리와 움직임을 결합한 복합예술 형식의 프로그램을 함께 선보인다.
DRB동일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선정한 국내 최대 규모의 다원예술 프로젝트로, 산업유산이 예술공간으로 재탄생하는 상징적인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승륜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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