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년 반구대암각화 지킴이 김호석 화백 ‘예올’서 특강

 

“20대에 처음 본뒤 예술성 감동

지구촌 돌며 100만점이상 조사

세계 미술 원형 담은 귀한 유적

세계유산 걸맞게 훼손 막아야”

지난 3월 동국대 박물관이 주관한 특별전 ‘보배로운 먹, 하늘의 향기’에 전시된 반구대 암각화 탁본.  연합뉴스
지난 3월 동국대 박물관이 주관한 특별전 ‘보배로운 먹, 하늘의 향기’에 전시된 반구대 암각화 탁본. 연합뉴스

그는 수묵화 대가이다. 40대에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1999), 광주비엔날레 한국대표 작가(2000)로 뽑혔다. 전통 화법을 현대에 창조적으로 진화시킨 작업으로 크게 인정받았다. 특히 황희 정승, 성철 스님 등을 그린 인물화는 팬층이 두텁다. 고 노무현 대통령 영정으로 사용된 초상화도 그가 그린 것이다.

김호석(68·사진) 화백. 우리 땅의 역사와 현실에 발을 딛고 인간 세상의 온갖 속내를 화폭에 담아왔다. 매일 작업실에 나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숙명으로 여기는 그는 현재 ‘탈속(脫俗)’을 주제로 한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런 그가 ‘암각화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특강에 나선다. 비영리 재단법인 예올이 오는 29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 강당에서 ‘반구대 암각화의 의미’라는 주제로 여는 강연회에서다. 이번 특강은 울주 대곡리와 천전리 유적을 포괄하는 ‘반구천 암각화’가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김 화백은 젊은 시절부터 ‘반구대 암각화 지킴이’를 자처해왔다. 20대에 처음 본 후 그 예술성에 마음이 크게 움직여서였다. 동국대 대학원 박사 논문으로 ‘한국 암각화의 도상과 조형성 연구’를 쓴 것도 그 흥감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 40여 년 동안 국내뿐만 아니라 러시아·몽골·카자흐스탄 등 세계 각지를 80여 차례 찾아 암각화 100만 점 이상을 조사하고 연구했다. 그 결실로 관련 저서를 4권 펴냈다. 그 내용의 고갱이는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 문명사에 없는 유적’이라는 것. 이동문명의 기억을 지닌 정착민의 그림이라는 점에서다.

“수천 년 전 선사시대 그림인데, 사냥 장면이나 개가 등장하지 않는 것, 앞다리와 뒷다리를 묶은 동물 모습이 있는 것 등이 그 증거입니다.”

김 화백에 따르면, 반구대 암각화에는 296점의 개별 그림이 표현돼 있는데 고래가 50마리에 달한다. 혹등고래, 북방긴수염고래 등 8종의 고래 특징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백두산 사슴과 함께 호랑이, 표범 등도 등장하는데 여느 암각화와 달리 그들의 공격성을 강조하지 않았다.

“수평과 수직, 사선까지 동원한 구도로 긴장과 이완의 균제미를 추구한 그림입니다. 세계 미술의 원형을 담고 있는 귀한 유적입니다. 이런 미감은 우리나라 미학의 역사와 정체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될 수 있습니다.”

김 화백은 공룡 발자국이 있는 곳의 앞쪽 북향(北向) 바위에 그림을 새긴 것에 특별한 의미를 둔다. 선사시대의 우리 선조들이 신성한 장소를 택해 자신들의 양식이 돼 준 동물들에 대한 제의(祭儀)로 암각화를 남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제가 세계 각지에서 100만 점 이상의 암각화를 봤지만, 북향은 거의 없었거든요. 반구대 암각화는 보통 때는 먹빛으로 컴컴합니다. 그런데 3월 말부터 4월 늦은 오후에 햇빛을 받으면 마치 레이저쇼가 펼쳐지는 것처럼 그림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입니다.”

그는 이런 ‘그림자 미학’을 지닌 문명사적 유적이 1년 평균 42일 동안 물에 잠겨 훼손돼 온 것을 안타깝게 여겨왔다. 아니, 분노해왔다. 그래서 울주 사연댐에 수문을 만들고 그걸 열어서 물이 빨리 흘러가도록 함으로써 암각화 훼손을 막자고 주장해왔다.

“그런 운동을 하면서 반대 입장을 지닌 분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말도 안 되는 스캔들 루머가 만들어지고, 대학교수직 퇴출 압박까지 있었지요.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는 국가 경사를 맞아 그런 일들은 잊고자 합니다. 이번 강연에서 그 소중한 가치를 되새기며, 우리 미술의 원류에 대해 함께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한편, 이번 특강 참가비는 무료이며, 예올 사무국(02-735-5878, 010-2492-6851)을 통해 문자로 신청하면 된다.

장재선 전임기자
장재선

장재선 전임기자

인물·조사팀 / 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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