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삼성전자와 SK가 오픈AI와 손을 맞잡고 차세대 반도체·인공지능(AI) 인프라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가 ‘스타게이트’와 같은 초거대 AI 산업 생태계를 우리 땅에 만들려면, 하루 수백만t의 물과 서울시 이상의 전력을 24시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기후대응댐과 신규 원전 건설을 사실상 백지화하거나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우려가 심각하다.

우선, 물 문제부터 보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만 해도 하루 100만t이 넘는 산업용수를 필요로 한다. 이런 수요를 감당하려면 새로운 저수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수도권 댐이 더 커지면 좋겠지만, 기존 댐을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100% 가까이 활용되고 있어 돌려쓸 여력도 없다. 상류에 댐이 건설되면 하류에 댐을 늘리는 효과가 생긴다. 필요할 때 상류에 비가 내리는 것과 같다. 그런데 환경부가 ‘기후대응댐’이라는 이름의 신규 댐 건설을 단순한 환경 훼손 논리로만 막는다면, 산업용수 공급은 물론 가뭄 대응 능력도 사라진다. 하천도 마르고, 산업도 마른다.

전력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반도체와 AI 산업은 24시간 끊김 없이 전력이 공급돼야 한다. 그런데 태양광과 풍력은 간헐성이 크고, 이를 보완하려면 백업용 가스발전과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요하다. 총비용은 이미 과도하게 비싼 산업용 전기요금(2024년, 168원/kWh)보다 2배나 비싸다. 심지어 태양광·풍력 단가가 공짜가 돼도 백업과 저장 비용 때문에 비싸다. 물이 공짜라도 얼음은 공짜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24시간 가동되고, 무탄소이면서 저렴한 전원은 우리에겐 원전뿐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이 모두 신규 원전 건설에 다시 나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AI 투자에서도 이미 밀리는 상황에서 전기요금도 미국·중국·일본보다 비싸므로 수십 기의 원전 건설이 필요하다.

신규 원전 건설은 더는 미룰 선택지가 아니다. 부지는 있다. 이미 여러 지역사회가 유치 의사를 밝히고 있고, 서해안의 석탄화력을 대체하면 송전 인프라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건설에 7, 8년 걸리니 서둘러서 계획해야 한다. 단기적으론 40년 운영으로 안전이 검증된 원전의 ‘계속운전’이 급하다. 우리 원전을 미국으로 옮겨 놓는다면 80년 허가도 가능하다. 그런데도 환경부는 ‘안전성 논란’을 내세워 계속운전에 미온적이며, 불합리한 제도 개혁을 주도할 계획도 없다. 아예 원자력 언급이 없다.

문제는 ‘기후에너지환경부’의 방향성이다. 만약 이 부서가 환경단체의 시각에만 매몰돼 원전과 댐을 저지하는 데 집착한다면, 그 이름은 그냥 ‘환경부’로 되돌아가는 게 맞다. 더 나아가 환경부가 원전 안전성을 이유로 산업정책을 제약하려 한다면, 차라리 원자력안전위원회를 해체하고 환경부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편이 논리적일 것이다.

스타게이트와 같은 미래 산업 인프라는 물과 전력이라는 두 기둥 위에 선다. 이 기둥이 무너지면, 한국의 반도체 경쟁력도, AI 산업의 꿈도 무너진다. 환경을 구실로 산업의 숨통을 죄는 정책은 ‘녹색’이 아니라 ‘회색’이다. 미래 산업도 살리고 탄소 배출도 줄일 에너지정책을 책임지고 추진할 때 명실상부한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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