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前 한국헌법학회 회장
국회가 조희대 대법원장을 대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공세를 넘어, 헌법이 보장하는 사법부의 독립성과 권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대법원장을 증인석에 세우겠다는 것은 사법부를 정치 무대로 끌어들이겠다는 뜻으로, 권력분립의 근본 원칙을 훼손하고 사법의 중립성과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다.
대한민국헌법은 제103조에서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독립’이란, 단순히 재판 내용에 대한 개입을 금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법부 전체가 외부, 특히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사법부의 독립은 ‘물적 독립’(법원의 외부로부터의 독립)과 ‘인적 독립’(법관 개인의 신분보장)으로 구성된다. 헌법은 재판 독립이 지켜질 수 있도록 다른 공무원보다 더욱 엄격한 신분보장 규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사법부를 대표하는 대법원장은 인적·제도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에서 완전히 분리돼야 한다. 그런데 국회가 국정감사를 빌미로 대법원장을 증인으로 소환한다면, 이는 사법권 전반에 대한 간접적 압박이 돼 권한 남용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해외 주요 선진 민주주의국가에서는 대법원장이 개별 사건으로 인해 소환된 사례가 없다. 미국의 경우 1950년대에 개별 사건을 이유로 연방대법관에 대한 두 차례의 출석 요구가 거부된 이후에는 전례를 찾을 수 없다. 또한, 지난 2023년에는 단순한 법원 행정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도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이 사법부의 독립과 권력분립 원칙에 반한다며 출석을 거부했다. 독일·프랑스 등 사법권 독립이 확고한 국가들 역시 입법부가 사법부 수장을 정치적 심문 대상으로 취급하는 일은 없다.
이처럼 선진국에서는 대법원장을 증인으로 출석시켜 개별 재판의 내용이나 판결 방향에 대해 질의·공세를 펼치는 일은 없다. 사법의 독립은 단순한 관습이 아니라,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제도적 안전장치라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번 대법원장 증인 채택은 국민의 정서와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국민 다수는 정치가 사법부를 흔들고, 재판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입법부의 요구에 따라 대법원장이 국감 증인으로 출석한다면, 향후 법원 전체가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판결하거나 권력의 향배에 따라 사법행정을 자의적으로 운용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회가 ‘견제’를 명분 삼아 ‘개입’을 일삼는다면,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 된다. 재판은 누구나 공정하게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전제가 바로 사법의 정치적 독립이다.
사법부는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다. 설령 국회 법사위의 이번 대법원장 증인 채택이 단 한 차례에 그친다고 해도, 이는 매우 위험한 관행의 선례로 남게 될 것이고, 전 세계 선진국들의 빈축을 사게 될 것이다.
평등한 삼권분립을 실현함으로써 헌법 질서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입법부의 책무다. 따라서 국회는 대법원장 국감 증인 출석 요구를 즉각 중지해야 한다. 사법부의 독립은 특정 진영이나 정권이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헌정 질서를 위한 핵심 가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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