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문10답 - 검찰 상소제도 개편 논란
무죄사건 상고율 3년간 5 ~ 13%
이재용 등에 ‘기계적 상소’ 지적
법무부, 형사소송법 개정 논의중
상소권자 검사 → 검사장 축소안
무죄 시 상소 사유 규정 등 거론
3심제 원칙 형사사법제도와 충돌
억울한 사건 재심기회 박탈 우려
“검사들이 되지도 않는 것을 기소하고, 무죄 판결이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것 아닌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월 30일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발언으로 검찰·사법개혁 이슈로 뜨거운 법조계에 또 다른 논쟁거리를 던졌다. 이 대통령은 작심한 듯 “1심에서 몇 년씩 재판해 집 팔아서 변론해 겨우 무죄가 되면 검찰이 무조건 항소한다. 항소심에서 기껏해야 5% 뒤집히는데 국가가 국민에게 왜 이렇게 잔인한가”라며 검찰의 상소(항소·상고) 행태를 지적했다. 정부조직법 국회 통과로 검찰청 폐지가 확정된 가운데 이 대통령이 새로 제기한 검찰 상소제도 개편 논란에 대해 정리했다.
① 이 대통령이 상소제도 개편 꺼내 든 배경
이 대통령이 상소제도 개편 필요성을 언급하고 나선 것은 그간 검찰의 기계적 상소로 인한 국민 피해가 적지 않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이 검찰의 상소권 남용 행태를 지적하면서 형사소송법 개정 필요성에 힘을 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공직선거법 위반 상고심 등 대통령직 당선으로 중단된 이 대통령의 재판 리스크를 임기 내 해소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은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지만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 파기환송된 이후 중단됐다. 다만 대통령실은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대통령의 오랜 철학과 맞물린 결과라는 입장이다.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검찰과 항소심 제도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한 배경에 대해 “특별히 어떤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며 “이 대통령의 오랜 철학이기도 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② 현재 검찰의 형사사건 상소 관행·사유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항소와 상고는 해당 법에 규정된 상소제도의 일환이다. 판결·명령·결정 등에 관해 불복 의사를 표시해 상급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법률행위다. 형사소송법 제361조의5를 보면 형사재판에서 검사 등 재판 당사자가 상소할 수 있는 사유가 명시돼 있다. 실제 재판에서 검찰이 주장하는 대표적인 상소 이유로는 ‘양형부당’이 있다. 1·2심에서 선고된 형의 종류나 형량이 검찰이 생각하는 적정한 형량보다 너무 가볍다고 판단될 때 제기하는 것이다. 검찰은 실형을 구형했는데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선고된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법원이 증거를 잘못 판단해 사실을 오인했다고 보고 상소하는 경우도 있다(사실오인). 검찰은 피고인이 유죄임을 입증했다고 보는데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경우 등이 해당된다. 1심 법원이 법률을 잘못 해석하거나 적용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법리오해). 검찰은 1심에서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부분 항소하는 경향이 크다고 평가받는다.
③ 검찰 상소 현황 등 관련 통계는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언급한 것처럼 법무부는 1심에서 무죄가 난 사건이 2·3심에서 유죄로 뒤집힐 확률은 각각 5%, 1.7% 정도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최근 5년간(2024년 기준) 사건을 집계한 수치다. 특히 1·2심 모두 무죄임에도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하는 건수도 한 해 200∼300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22∼2024년 1·2심 모두 무죄가 나온 사건에 대해 검찰이 상고한 건수는 각각 277건, 277건, 218건이었다. 당시 1·2심 전부 무죄 선고 건수는 2022년 2123건, 2023년 2699건, 2024년 3823건이었다. 비율로 따지면 상고율은 13.04%, 10.26%, 5.70%다.
④ 기계적 상소라고 비판받은 주요 사례는
기계적 상소라고 검찰이 비판받은 대표적 사례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이 꼽힌다. 검찰은 1·2심 재판부가 이 회장에게 적용된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한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 하지만 지난 7월 대법원 역시 19개 혐의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2심까지 사실인정과 법률 판단이 검찰에 불리하게 나왔는데도 일단 상고해 최종심까지 끌고 가는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더 커지게 된 계기가 됐다.
과거사 재심 사건들도 기계적 상소를 해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과거 정권의 불법적인 조치로 유죄를 받았던 피해자들이 수십 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들로, 부마민주항쟁 재판이 대표적이다. 당시 검찰은 법원의 무죄 선고 이후 “확정판결이 뒤집힌다면 법적 안정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대법원에 상고했다.
⑤ 법무부의 상소제도 개선 논의 방향은
정 장관이 형사소송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법무부는 상소남용 방지를 위한 법 개정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국가형벌권이 작동하는 형사사건의 상소권자 범위를 줄이거나, 상소 사유를 제한하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형소법상 상소권자는 검사 또는 피고인, 피고인의 법정대리인 등으로 제한돼 있다. 검찰의 경우 공소유지를 담당하는 검사가 항소 또는 상고를 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상소권자 범위를 ‘검사’에서 공소유지 담당 검찰청의 검사장 등으로 줄여 보다 객관적인 ‘제3자 관점’에서 상소 여부를 따지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무죄가 나온 사건에 대해서는 상소를 제기할 수 있는 사유를 법 또는 내부 규정에 별도 명시해 기계적 상소를 막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검찰의 형사상고심의위원회와 공소심의위원회 등 기구들을 강화·실질화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법무부는 두 위원회의 운영지침을 규정한 대검찰청 예규를 개정할 예정이다. 위원회 의결에 일정 부분 강제성을 부여하거나, 외부위원의 수를 늘리는 방법 등이 거론된다.
⑥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상고제한법은
이정문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핵심은 ‘상고의 제한’ 규정을 신설해 1·2심에서 무죄 선고된 사건에 대해 검찰이 상고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다. 면소·공소기각 등이 나온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항소와 상고 등에 제한을 두지 않지만 이 의원은 “기소 오류를 조기에 시정할 필요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 법안은 지난달 30일 이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이후 하루 만에 발의됐다. 다만 이 의원 측은 이 대통령의 해당 발언이 나오기 전부터 준비해왔던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아직 이 법안을 당론으로 추진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내 공감대가 많이 형성돼 있어서 당론 채택 가능성은 있다.
⑦ 이 대통령 재판과 이해충돌 가능성은
이 대통령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심과 위증교사 사건 항소심, 대장동·백현동·위례신도시·성남FC 사건 1심 등 모두 5개 형사재판의 피고인으로 재판받던 중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재판이 중지된 상태다. 파기환송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사건 재판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상소제도 개편 지시는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는 지적과 함께 발언 적절성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민주당이 발의한 ‘상고제한법’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이 대통령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검찰이 항소한 위증교사 사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중지된 항소심 재판을 이 대통령 퇴임 후 재개해 항소 기각 판결이 난다면 검찰은 아예 대법원에 상고할 수 없게 된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직접적인 이해충돌로 단정하기 어렵지만, 본인 사건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상소제도 개편을 언급한 것은 사법개혁이 아닌 개인 사건을 겨냥한 압박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⑧ 상소 제한 시 현행 3심제와의 충돌 가능성은
헌법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 헌법상 3심 제도가 반드시 절대적 법칙은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하지만 기존 형사사법체계가 3심제를 기본 원칙으로 하는 만큼 상소제도 개편 추진은 현행 3심제 원칙과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잇따르고 있다. 검찰의 기계적 상소를 지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과는 별개로 여러 차례의 심급을 둬 억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3심제의 취지에 역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2심 판결에 불복이 있으면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상소권을 제한할 경우 이 조항에 정면 배치된다. 또 헌법이 보장하는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위헌 논란도 제기된다.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상소를 제한할 경우 3심제를 원칙으로 하는 형사사법제도와 정면으로 충돌할 위험이 있다”며 “(상소 제한은) 국민이 3심 재판을 받을 권리를 근거 없이 훼손하고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⑨ 범죄피해자 반발 우려는 없나
상소제도 개편 논의와 관련해 검찰의 상소권을 제한하는 것이 자칫 범죄피해자의 법적 구제 수단을 막는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란 법조계 우려도 제기된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의 무리한 항소를 제한해야 한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반대로 억울한 피해자들의 재심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법원 판례 등에서 증거 확보의 위법성 여부를 엄격하게 따지면서 다수의 증거가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해 결국 무죄를 선고하는 사례도 존재하는 데다 법리에 관한 재판부의 잘못된 해석으로 무죄를 선고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범죄피해자 입장에서는 다시 한 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기회를 잃게 된다는 점에서 불만을 제기할 수 있다. 특히 성범죄나 경제범죄처럼 증거 확보가 어렵고 피해자 진술 신빙성의 핵심 쟁점이 되는 사건의 경우 무죄 선고가 곧 ‘사실무근’처럼 받아들여질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⑩ 미국 등 해외에서는 어떻게 적용되나
주요국 중 무죄 판결에 대해 원칙적으로 검찰 상소권을 제한하는 국가는 미국뿐이다.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검찰이 무죄가 난 피고인에 대해 항소할 수 없다. 수정헌법 5조에 따라 같은 사건에 대해 피고인을 두 번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배심원이 유죄 평결을 내렸는데 재판장이 무죄를 선고했을 때나 법률 해석을 통일하기 위한 경우 예외적으로 상소를 허용한다.
한국을 비롯해 프랑스·독일·일본 등 대륙법계 국가들은 검사 상소권을 폭넓게 인정한다. 1·2심에서 무죄가 선고돼도 검사가 이에 불복해 상소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검사가 피의자·피고인에게 유리하게도, 불리하게도 상소할 수 있고 재판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한 항상 불복할 수 있다(형사소송법 제296조 제2항). 또 항소심이 ‘제2의 사실심’으로서 새로운 사실과 증거채택도 가능하다.
다만 일본에서는 최근 이중처벌 논란이 일면서 검찰 항소권 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영국이나 호주는 중대범죄에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 경우에만 검사가 상소할 수 있다.
황혜진 기자, 이후민 기자, 김군찬 기자, 서종민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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