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민의 정치카페 - 양평 공무원 사망 파장

 

강압·수모의 고통 드러낸 메모 속 애끊는 표현들… 김건희특검, 실적 몰려 무리한 수사 했나

‘밀실 고문’ 사라지자 ‘조사실의 강압’ 들어서… 특검 범죄 밝혀지면 법적·윤리적 후폭풍

지난 10일, 경기도 양평군의 한 공무원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건희 특별검사팀(특검 민중기) 조사를 받은 후였다. 특검은 강압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고인이 남긴 자필 메모에는 강압과 수모의 고통을 드러낸 애끊는 표현들이 구구절절 담겨 있었다. ‘다잉 메시지(dying message)’다.

◇다잉 메시지

특검 조사를 받고 풀려난 당일, 죽음이 덮치기 1주일 전 써내려간 메모 속 흔들리는 글씨는 고인이 특검의 강요와 강압 속에 조사를 받으면서 겪었을 고통을 짐작하게 한다. “사실대로 말을 해도 계속 다그친다” “사실을 말해도 거짓이라고 한다” “진술서 내용도 임의로 작성해서 답을 강요하였다” “빨리 도장 찍으라고 계속 강요한다”….

수사 과정에서의 강압과 강요가 드러난다면, 그리고 이것이 고인의 삶을 마감하게 한 원인이 됐다면, 이는 법치주의 국가에서 용납받을 수 없는 만행이다. 전두환 정권 당시 고문 속에 숨을 거둔 학생 박종철이 떠오른다. 당시 경찰은 강압이나 고문을 부인하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죽었다).”

고인의 메모는 단순한 글이 아니다. 임종 직전에 범인의 범행을 폭로하는 ‘다잉 메시지’로 보인다. 죽음을 예감한 상태에서 남긴 진술은 진실성의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돼 증거능력을 인정받는 경우가 있다. 법조계에서는 진술의 형성·보관 과정에 허위 개입 여지가 거의 없고, 외부적 정황으로 신빙성이 담보되면 ‘특신상태’로 취급돼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보고 있다.

에밀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자살은 단순한 개인의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압력의 결과이며, 사회적 사실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고인이 죽음 직전 남긴 메시지는 그를 둘러싼 구조적 폭력의 징표다. 고인의 비극이 특검 조사 후의 죽음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압력의 징표가 더 뚜렷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고인의 한 장짜리 메모에는 ‘강압’ ‘수모’ ‘멸시’ 등 표현이 18차례나 등장한다. 이는 자신의 처지를 특검 수사과정의 압박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으로 인식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고인이 남긴 메모는 단순한 하소연을 넘어, 자신의 죽음이 강압적 수사에 의해 촉발됐음을 고발하는 증언적 기록이다.

◇사회적 죽음

고인의 메모 내용과 관련, 특검은 “조사 중 강압이나 회유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하나 고인은 “괴로웠다”는 체험적 느낌을 남겼다. 그의 비극이 강압적 권력수사가 낳은 사회적 죽음(social death)으로 읽히는 이유다.

한국 현대사에는 공권력의 폭력성에 의한 인간존엄 말살을 상징하는 사건이 여럿 있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4년 민주화세력의 저항을 억압하기 위해 조작한 공안사건으로 8명이 사형당했던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훗날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음으로써 국가폭력의 상징이 됐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고 1987년 체제가 수립됐다.

이들 사건은 모두 물리적 폭력을 동반한 권력수사라는 공통 구조를 갖는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신체적이고 직접적인 고문은 심리적 강요와 압박으로 진화했다. 권력은 폭력이 아니라 합법적 절차로 포장된 강압을 사용하게 됐다. ‘밀실의 고문’이 사라진 자리에 ‘조사실의 강압’이 들어섰다. 형식은 문명화됐으나 실질은 통제되지 않았다.

박종철의 죽음이 민주화의 불씨가 됐듯, 이번 공무원의 죽음은 권력수사의 ‘문명적 통제’를 묻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그 성취가 제도화되지 못한 구조적 결함이 곳곳에서 이빨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1987년 체제 이후 우리는 대통령 직선제, 기본권 보장, 언론 자유 등 정치적 민주화는 달성했지만, 그 뼈대를 구성하는 권력의 작동원리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검찰·경찰·정보기관은 때로, 여전히, 정권의 도구로 기능했다.

막스 베버는 근대국가를 ‘정당한 폭력을 독점한 합리적 관료제’로 정의했다. ‘정당함’과 ‘합리성’은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은 문화적 자기반성과 시민적 감시의 내면화에 의해 완성된다. ‘문명적 통제’란 단순한 수사-기소 분리가 아니라, 인권·절제·책임이라는 윤리적 토대를 공권력 내부에 스며들게 하는 것을 뜻한다.

◇법적 책임

공무원의 메모 내용에 나온 사실관계가 밝혀지고 새벽을 넘긴 조사 등의 범죄혐의가 입증된다면, 김건희 특검팀은 여러 층위의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

첫째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형법 제123조).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 특검이 오전 10시에 시작해 자정을 넘긴 장시간 조사·자백 강요 등으로 피조사자의 진술거부권·수면권 등 인권을 침해한 경우다. 고인의 메모에 이에 대한 구체적인 메시지가 담겼다.

둘째 가혹행위죄(형법 제125조). 재판, 검찰, 경찰 기타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폭행·가혹한 행위를 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여기엔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반복적 모욕·수모·심리적 압박도 포함된다. 메모에 등장하는 ‘강압·수모·멸시’ 발언, 장시간 심문, 새벽 조사 등이 이를 말해준다.

셋째 불법체포, 불법감금죄(형법 제124조).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직권을 남용하여 체포·감금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수사기관이 장시간 조사·귀가 제한·수사실 유폐 등으로 피조사자를 사실상 귀가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었다면 불법감금이다.

넷째 증거인멸 등(형법 제155조).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하여 증거를 인멸하거나 은닉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특검이나 경찰이 CCTV나 유서 등을 고의로 은닉·폐기했다면 직권남용과 증거인멸 병합이 가능해진다.

마지막으로 특검 임명권자인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행정적 책임. 형사책임은 없지만 대통령은 특검 임명권자로서 특검의 인사·예산·보고체계의 최종책임자이다. 따라서 형사소추의 대상은 아니더라도, 정치적·윤리적 책임이 발생한다.

◇인간존엄의 파괴

양평군 공무원의 메모는 공권력 아래에서 인간존엄이 어떻게 파괴될 수 있는가를 고발하는 동시에, 성과에 눈먼 특검의 구조적 폭력을 증언한다. 우리는 1987년에 ‘고문 없는 나라’를 만들었지만, 2025년 지금까지도 ‘괴롭힘 없는 수사’를 갈망한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겉은 민주성, 속은 비민주성’으로 신음 중이다.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설명

‘특신상태’란 진술이나 조서·서류 작성에 허위 개입 여지가 없고, 신빙성이나 임의성을 담보할 구체적이고 외부적인 정황이 있는 상태. 형사소송법상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을 가질 수 있음.

‘문명적 통제’란 문명사회에서 힘과 문화, 제도 등 다양한 요소를 문명적 질서 아래 두어 사회 전체의 안정과 진보를 추구하는 것. ‘문민통제’와 구분되며, 문화·제도·윤리의 통합을 중시함.

■ 세줄 요약

다잉 메시지: 특검 조사 후 목숨을 끊은 양평군 공무원의 자필 메모는 강압수사의 고통을 고발하는 ‘다잉 메시지’로, 형사소송법상 증거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어. 에밀 뒤르켐은 “모든 자살은 사회적 압력의 결과”라고 말함.

사회적 죽음: 고인의 비극은 성과에 쫓긴 특검의 권력수사가 낳은 사회적 죽음. 1987년 민주화체제 이후 ‘밀실의 고문’이 사라진 자리에 ‘조사실의 강압’이 들어섰다는 점에서 권력수사의 작동원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

법적 책임: 메모에 나타난 범죄혐의가 입증된다면 특검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비롯한 여러 층위의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어. 대통령도 형사소추의 대상은 아니지만, 특검 임명권자로 정치적·윤리적 책임이 발생.

허민 전임기자
허민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